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낡은 이념의 좌표는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 없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답게 살자는데, 모두 함께 행복하자는 데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그러나 우리들의 상식은 서로 조금씩 다르고 행복의 기준도 다르다. 그래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목숨을 건다. 일견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삶의 기준과 목표에 따라 우리들의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들을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김규항의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꿈같은 이야기에 위안을 얻을까 아니면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의 이야기로 들을까. 내가 김규항의 글을 읽는 것은 운동화 끈을 다시 묶듯 풀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이다. 혼자 걷다 보면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가 많다. 더불어함께 걷는 것 같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홀로 사막을 걷는 느낌일 때가 있다. 일면식도 없는 김규항의 말을 듣다보면 어느새 위안을 받게 된다. 정색을 하고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걷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신념이 때때로 부럽고 변함없는 그의 목소리가 가끔 그립다. 그래서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는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인터뷰이 김규항을 보고 자연스럽게 읽게 된 책이다. 스스로 B급 좌파로 칭하는 김규항이 말하는 이 시대의 진보와 영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들의 현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김규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과정도 다르고 결과에 대한 평가와 만족도 다르다. 부끄러움의 기준도 다르고 욕망하는 것도 다르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삶을 함께 생각하는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물질적 욕망, 타인과의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견고한 질서에도 균열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대로 얼마나 우리가 더 버틸 수 있을까.

  인간의 소유욕에 대해 김규항은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을 비려와 “권선생께서 ‘32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하는 숙제 때문에 사람들이 바보가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은 어떤 사상이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금욕 생활을 한 게 아닙니다. 욕망이 달랐던 거죠.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평범한 사람들 안에도 그런 편린들이 있어요. 세상이 강요하는 욕망을 열심히 좇다가도 순간순간 허무감에 빠지는 건 실은 그런 편린들 때문입니다. 물론 대개는 더욱 욕망을 좇아서 허무를 극복하려 들지만요.”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 원하는 삶은 네모난 틀에 담기듯 비슷하다. 그러나 현실은 비참하다. 열여덟 살 아이들의 꿈이 공무원이라니! 날마다 두근거리고 재미있는 일을 꿈꾸며 내일을 향해 달려야 할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의 꿈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길들여진 아이들과 길들이고 있는 어른들에게 삶은 치열한 경쟁이며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고 소박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멈춰버리는 난쟁이의 꿈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페미니즘, 2008년의 ‘촛불’과 2009년의 ‘추모’ 등 김규항은 우리들 삶의 갈피들을 읽어내며 구체적인 부분에서 거시적인 담론까지 종횡무진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인터뷰어 지승호의 인터뷰이에 대한 꼼꼼하고 성실한 준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인터뷰이의 글을 통해 작은 생각 하나, 생각의 단초 하나 놓치지 않고 깊고 넓게 들여다본다. 지승호의 질문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김규항의 시작과 현재를 알게 되고 생각의 흐름을 들여다보게 된다.

  예민한 문제인 ‘예수’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예수전』을 통해 이미 기독교와 예수의 본질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김규항의 영성은 미국까지 날아가 헌금을 강요하고 전직 두 대통령이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김홍도 목사의 믿음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예수의 말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니 당연히 믿음도 다르다.

지승호 : 백만장자들한테 ‘만족하느냐?’라고 묻자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딱 두배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대요.
김규항 : 그들은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부자와 낙타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아니 그런 이야기에 신경 쓰거나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부자가 나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 부자가 되는 방법과 그 출발선, 부자의 기준과 부자가 되려는 목적 따위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과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은 불피요한 것일까. 김규항은 내일을 위한 진보와 미래세대의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고래가 그랬어』를 발행한 이유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말에 공감한다. 키워지는 대로 길러지고 말하는 대로 믿고 시키는 대로 공부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만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이 심어지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가득 채워지지만 않는다면.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높은 가격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는가가 교육의 목표가 되었어요. 실은 교육이라는 게 사라진 거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거죠. 그걸 교육이라고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올인합니다. - P. 292

  이 말에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직업, 미래, 꿈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사람은 못 되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김규항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동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오십보 백보의 싸움은 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부터 진지하게 반성할 일이다.  


100427-0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