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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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 실제로 닥쳐오는 위험보다 많지만 막상 위험이 닥칠 때는 어떤 경고도 없는 법이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불길한 예감을 전해준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걱정 중에서 30%는 일어나지 않고 45%는 사소한 것이며 25%는 과거의 것이라는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불안이 기실 쓸데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거나 준비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것은 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막상 위험이 닥칠 때 우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된다.

  소설은 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일어날 수 없는 일들까지 상상하는 것은 물론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어야 하며 간접 경험의 즐거움은 예상할 수 없을수록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정해진 순서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보다 우리는 때때로 황당하고 기괴하지만 딱히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바로 편혜영의 『재와 빨강』같은 소설 속에서 말이다.

  삶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 순간도 빈틈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가? 아니면 게으르게 하고 싶은대로 적당히 즐기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한가?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쪽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치열하게 욕망할수록 불행해지고 포기한 듯 절망하는 편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생의 아이러니다. 삶이 부조리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과 룰에 따라 움직이는 순간 모든 예술은 사라진다. 말할 수 없고 해석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 보여줄 것이 없다면 소설가는 무엇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편혜영의 장편 소설 『재와 빨강』은 위험한 상상과 불온한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불가능한 상황 설정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미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경계선 너머의 인생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건은 단순하다. 제약회사에서 약품을 개발하던 주인공은  C국에 파견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C국에 도착하자마자 불행은 시작된다. 이혼한 아내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동창생 유진의 말을 믿을 수 없으나 출국하기 전날 그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혼란스런 그는 감금생활을 해야하는 아파트에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쓰레가 더미로 뛰어 내린다. 부랑자 생활을 거쳐 방역업체에서 쥐를 잡게 된다. C국에 파견된 것도 쥐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주인공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어둠과 파괴 그리고 동물적 상상력의 세계가 재로 표현된 것 같다. 눈부신 빛과 인간의 생명을 상징하는 빨강으로 나타낸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재와 빨강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이미지로 주인공 사내의 아이러니한 삶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보여주는 듯하다. 기괴한 이미지와 칙칙한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어날 수 없는 수렁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동일시된 자아를 발견한다.

  조금씩 상황만 다를 뿐 이보다 더 지독한 반전과 생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전혀 낯선 세계에서 살인자가 되어 쫓기는 주인공은 전염병과 낯선 언어와 사람들 속에서 오로지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버틴다. 멀쩡한 직장과 평범한 일상이 있는 곳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한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과 타인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 때문에 극적 반전을 경험한다. 우리의 삶도 이러하지 않은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치열하게 욕망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불행의 시작이 되는 모순. 이것이 아마 모든 인간의 운명은 아닐까?

  편혜영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신종플루의 공포가 전세계를 뒤덮던 시기에 인간의 삶은 언제든 극적 반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 같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불편하게 읽히지만 새롭고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소설도 우리에겐 언제든 필요하다. 생경한 방식으로 인간과 삶의 방식을 통찰하고 있는 작가의 다음 소설도 기다려진다.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우리를 안내 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언제나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며 작가들의 애정만큼 가열차게 욕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헛된 욕망이며 오히려 불행을 경고하는 빨간 신호등일지라도 말이다.


10041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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