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아니, 우리 각자가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생의 목표와 가치관은 변할 수 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와 행복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다. 사람들의 선택할 수 있는 폭과 범위는 각자 조금씩 다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운명적, 태생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한국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다른 부모와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다. 그것이 전부 일수는 없지만 완전히 달라질 수도 없다. 개인의 선택과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느냐가 바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의 척도가 아닐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주변을 돌아보자. 얼마 전에도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20대 실업률 증가, 중산층 감소, 양극화 심화 - 이런 객관적 사회 지표들은 단순히 경제 상황에 따른 사회 변동으로만 볼 수 없다. 정치제도의 합리성, 사회제도의 민주성, 경제적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선진국 혹은 복지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 의사결정이 통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속한 집단은 그런가?

  세상 사람들의 냉소는 이제 한계를 넘어섰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정치에 대한 냉소, 경제적 이기주의는 2010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들이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는지, 사회에 나가면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지 가족과 친구,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만 잘 사는 사회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김용철과 삼성, 아니 우리 모두와 삼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단순한 한국의 재벌 그룹 이 상의 상징이 되어버린 ‘삼성’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이어야 하나. 삼성그룹 구조본의 법무팀장이었던 검사출신 변호사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건강진단서를 보는 것 같았다. 설마 이 정도까지겠는가 그래서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는 미련을 털어버리게 만든 책은 일요일 오전에 읽을 만하지 않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막힘없이 읽힌다. 기사문을 작성하듯 짧은 문장과 간결한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을 전달하듯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 진실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양심선언을 사람들은 벌써 잊었다. 주류 신문과 방송이 외면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발표 되었던 삼성의 비자금과 불법 승계의 썩은 고리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로 행사하며 세상은 이런 곳이라는 떳떳하게 밝히고 산다. 백주 대낮에 그들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 우리가 그들이 되고 싶은 부끄러운 현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마니로 덮어 놓은 부패한 음식의 악취가 천지를 진동하지만 코는 쉽게 그 냄새에 익숙해진다. 무뎌진 후각만큼 우리 삶의 가치는 성공한 재벌에 대한 면죄부를 향해 달려간다. 좀 더 많이, 확실하게 벌고, 보다 강한 권력을 갖는 자가 살아 남는다. 영화 속 조폭의 한 마디처럼 ‘강한 놈이 살아 남는게 아니라 살아 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십년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다. 진시황도 죽었고 히틀러도 죽었다. 김일성도 죽었고 박정희도 죽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재벌은 죽지 않는다. 창업자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룹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뇌물과 그 모든 비리와 불법을 인정해주는 검찰과 언론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오늘도 행복하신가?

  우리 주변에는 삼성에 다니는 가족, 친구, 선후배가 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국어교사가 된 제자와 삼성전자에 입사한 제자를 함께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복잡했다. 김용철은 이 책을 통해 글로벌스탠다드를 지향하는 삼성의 비리를 고발하지 않는다. 이 책은 오롯이 비정상적, 비상식적 사고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고 있는 이건희와 그 가신들 그리고 이재용에게 바쳐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부패한 검찰과 썩은 언론을 위해 쓰여졌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정서 문제이다. 당신은 삼성의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삼성이 만든 제품이나 삼성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이 아니다. 무노조 경영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삼성에 대한 태도는 바로 우리 사회의 주류의 가치관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삼성에 대한 입장은 재벌친화적인 우리 사회 주류의 가치관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한다. - P. 389

  감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삼성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대로 우리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공포와 불안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지 않는가. 지금 이대로의 현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말해줄 수 있는가. 대기업, 판검사와 변호사, 언론인이 되어 우리 사회를 이끌어 달라고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을 닮으라고 권해줄 수 있는가. 이 땅에서 아이들을 길러야 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 나는 이 책을 울면서 읽었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 P. 448
 

100321-0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