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 여자로 살고 싶은, 하지만 남자라 불리는 열일곱 청춘의 이야기
줄리 앤 피터스 지음, 정소연 옮김 / 궁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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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동성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 적이 있다. 이성과 논리, 말과 글로 표현된 성적(性的) 소수자에 대한 생각과 시각적 이미지로 확인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처럼 낯설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생소함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 배치함으로써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대자연 속에 펼쳐지는 두 남자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깊은 슬픔을 토해 냈고, 히스레저의 사망으로 영화에 대한 기억은 더욱 비극적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동성애 혹은 트랜스젠더를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보다 지독한 성적(性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전통적인 동양 사회에서는 더욱 심하다. 이 금기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저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을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논리와 이성에 앞서 심정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자로 살고 싶지만 남자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그 이름은 『루나』. 밝게 빛나는 태양이 되지 못하고 어둠이 내린 뒤 달빛이 되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적절한 이름이다. 작가 줄리 앤 피터스는 커밍 아웃한 레즈비언이다. 작가의 직접 체험에서 길어 온 사유의 깊이는 독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성인들에게도 많은 고민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들은 비정상일까? 정상이란 또 무엇일까?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의 몸이었던 불행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남자 아이가 여성적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자 아이가 남자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의 벽과 마주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집단적 성향과 관습의 벽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단순함, 그것은 그럴 것이라는 편견, 예전에도 그랬다는 안일함 앞에서 우리는 좌절할 때가 있다. 더구나 동성애도 아니고 트랜스젠더의 문제는 우리의 가치관과 전통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해체한다. 도대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어떤 기호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본능과 욕망, 유전적 질서의 힘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런 마음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렴풋이 그들(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리두기와 가치 판단 미루기를 위한 3인칭)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가족과 사회 안에서 기대되는 성역할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문화적 관습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질서 속에서 이해하는 거대한 사회적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소설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트렌스젠더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남자 주인공의 여동생 레이건이 이 소설의 서술자이다. 오빠 리엄과 언니 루나는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자아를 곁에서 매일 지켜보아야 하는 동생 레이건의 시선은 부모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다르다. 밤마다 잠을 설치며 루나가 되는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리엄은 가짜이고 루나가 진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레이건의 고통은 루나만큼 심각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루나와 레이건 두 명이 모두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리엄은 현실 속에서 거의 완벽한 남자로 등장한다. 잘생긴 외모와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여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고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다. 열 일곱 청춘으로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어머니의 외면 속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루나는 리엄의 진짜 모습이다. 아무리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해도 루나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더욱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여장을 하고 쇼핑을 하러 나가는 장면은 읽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독자에게 던져진 편견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진다. 결국, 리엄은 수술을 결정하고 집을 떠난다. 여동생과 이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이 소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특별한 소재와 인상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 의해 서술된 소설이 아니라 한번쯤 우리 모두가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나의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내가 가진 특별한 성격과 취향처럼 선택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주변의 소수자들을 위한 작은 관심 그리고 편견 없이 그들을 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있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태도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性的) 소수자 이외에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정확하고 섬세한 표현, 탁월한 심리 묘사, 담담한 문체가 이끌어 낸 아름다운 소설 한 권을 누구에게 권해볼까.


1003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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