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용산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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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맨 허리에도
제 온몸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꺾이고 마는 노동자에게도

그 허리에 재물 올려 도둑놈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 두룬 재벌의 담벼락에도
그들돠 한패되어 시시때때 벌이는 쇼
고관대작들의 평화통일 축제에도 있다.
있다. 있다. 어디에도 있다. 아아아...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냐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냐

- 안치환, 5집 Desire


  깊은 밤에 만화책을 읽다가 눈가에 눈물이 맺혀 천장을 오래 보아야 했다. 하종강은 ‘부채감’ 때문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는데 우리는 그 ‘부채감’ 조차 느끼지 못한 채 이 시대를 건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역사는 무어라고 기록할 지 자못 궁금하다. 먼 훗날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총리와 서울 시장의 형식적인 사과와 대책 협의가 이루어지고 1년 만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 다섯 명의 철거민은 구천을 떠돌았다. 누구와 왜 싸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죽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모호하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형을 선고 받았다. 과연 용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섯 명의 만화가가 그린 『내가 살던 용산』은 용산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숨을 거둔 다섯 명의 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그들은 왜, 어떻게 그곳에 있었으며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끔찍한 뉴스로 생각하기 쉽다. 사건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현상과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태는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그마저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언론의 행태는 참사보다 끔찍하다. 도대체 용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상림(72세), 양회성(58세), 이성수(51세), 한대성(54세), 윤용헌(49세).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들이 그곳에 가는 과정은 신산스런 삶을 살아가던 순박한 우리 이웃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준다. 돈이 없어 어려운 생활을 꾸렸던 사람들, 장사가 잘 되다가 보증금에 대출금까지 건질 수 없게 된 사람들, 혼자 힘으로 견디기 어려워 힘을 나누던 사람들……. 죽을 정도로 잘못을 한 사람들일까?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어 진압할 정도로 위험한 폭도들이었을까? 왜 살기위해 국가권력이나 자본과 싸워야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 책을 쓴 만화가들은 용산 망루에서 숨을 거둔 유가족과 철거민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꺼내고 싶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야 하는 가족들과 그것을 그리고 써야 하는 만화가들의 만남이 아프게 느껴진다.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만화를 보다가 글보다 감동적인 그림을 만나기도 했고 그림의 감동을 뛰어넘는 대사를 만나기도 했다.

  행간을 뛰어넘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라면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만화의 즐거움이다. 김수박의 ‘철거민’, 유승하의 ‘잃어버린 고향’, 신성식의 ‘던질 수 없는 공’, 김성희의 레아호프, 그들이 만든 희망, 앙꼬의 ‘상현이의 편지’, 김홍모의 ‘망루’ 와 용산 참사일지로 구성된 『내가 살던 용산』은 전국민 필독서로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30여년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현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 GNP가 높아지고 빛의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우리 현실은 아니 가난한 이웃과 없는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함께 어깨 겯고 웃음과 행복을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앙꼬의 ‘상현이의 편지’는 고(故) 이성수씨의 아들 입장에서 서술된다. 다른 만화보다 특히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와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와 아픔을 누가 보듬어 줄 것인가. 한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은 시대의 아픔과 구성원의 고통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관심과 따뜻한 정성이다. 진실을 알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용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철거민이 그랬던 것처럼.


10030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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