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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평점 :
일탈 혹은 자유
아침이 밝아오는 동편 하늘 혹은 해질녘 서쪽 하늘을 물들인 빛의 산란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바늘 하나 꽂을 곳 없는 세상에 태어나 반복적인 일상과 힘겨운 생존의 몸부림. 모두 같은 꿈을 꾸는 세상은 불안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빛깔의 무지개를 그려보지만 만만치도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박민규는 이렇게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는 신현림에 말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몇 안 되는 지구인처럼 보인다. 스스로를 ‘무규칙이종소설가’로 규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우리는 그의 일상과 내밀한 정신세계를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소설들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작가를 이해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한 개인에 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조금 더 잘 읽어보려는 의도이거나 작가가 말하는 세상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문법임에도 불구하고 불가해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소설을 만나면 독자들은 불편하거나 극단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일탈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명명된다. 현실 밖의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이 아닌가. 현실에 발 딛고 비상(飛翔)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그 세계를 경험한다. 지극히 이성적인 일탈 혹은 몽환적 자유.
박민규의 소설들은 ‘틀’을 버린다. 2010년 34회 이상문학상작품집 『아침의 문』은 ‘이상(李箱)’의 문학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이상문학상’ 수상작가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수상했던 어떤 작가보다 이 상에 가장 어울리는 수상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의 소설을 읽어 온 독자들은 그가 앞으로도 일탈의 환상과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일상의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들여 쓰지 않는 그의 소설을, 어깨를 긴장시키지 않는 그의 문장을 킥킥거리며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희망과 환타지 너머
수상작 ‘아침의 문’은 자살사이트에 만난 사람들의 동반자살 실패가 시작이다. 물론 죽지 못한 한 사람이 문제다. 생을 긍정한 사람만이 죽을 수 있다.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삶의 끝에서 만나야 할 죽음을 꿈꾸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소설은 주제는 물론 그 이유를 찾는 데 있지 않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살은 삶의 그림자 놀이?
사람들은 오늘을 사는 이유가 내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짓이다. 외면하고 싶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때때로 우리의 목을 조른다. 아무생각 없이 매일매일 행복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박민규는 육하원칙에 따라 주인공의 일상을 명백하게 밝히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비정규직은 아닐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 불안하게 흔들리는 존재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이 생을 살다가 사라진다. 생명의 탄생만큼 신비한 죽음의 세계는 늘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다. 외면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박민규는 죽음의 입구에서 탄생을 바라본다. 그것은 생을 긍정하기 위한 상징이 아니라 비루한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위안이다. 자선 대표작으로 뽑은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가 바로 이 일상의 권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희망 없는 오늘을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민규는 희망 없는 희망은 가능한지 묻고 있다. 보이지 않는 혹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탈을 시도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차라리 눈물겨운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위로와 공감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밖의 것들은 또 다른 소설을 통해 확인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시작이라고 소설 쓰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박민규의 문학적 자서전을 읽으며 ‘ㅋㅋㅋ’. 꿈없는 청춘, 희망 없는 일상, 3류 들의 고통을 즐겨 보여주는 박민규에게 희망이나 환타지가 아니라 그 바닥을 보여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어설픈 사회소설이 어울리지 않는 박민규에게 우리는 적나라한 현실과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기분이 든다. 조금 더 철저하게 혹은 더욱 더 환상의 세계를 보여 달라고 조르고 싶은, 박민규의 힘을 믿고 싶다. 우리에게도 박민규는 필요하다. 거기 그대로 머물러 달라.
주목할 만한 소설가들
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단편 중 ‘통조림 공장’과 윤성희의 ‘매일매일 초승달’은 수상작으로도 손색없다. 소설적 완성도 면에서 이미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 듯 싶다. 독자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있겠지만 소설의 다양성, 실험성을 고려하더라도 두 작품은 단연 돋보인다.
전성태의 ‘이야기를 돌려드리다’는 이야기의 힘 즉 서사의 본질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다. 김중혁의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의 실험성은 커다란 울림을 주지 못했고 손홍규의 ‘투명인간’과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는 일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단편으로 읽혔다.
이상문학상이 갖는 권위에 눌려 호기심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평소 우리 소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통해 다같이 즐기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말에 방영되는 텔레비전의 각종 시상식의 절반만큼이라도 문학상과 책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삶은 얼마쯤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모든 작가들의 건투를 빌빈다.
100207-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