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베어 카르페디엠 7
벤 마이켈슨 지음, 정미영 옮김 / 양철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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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진실을 거부하지 않으며, 억압했던 고통을 자기 안에서 느끼고, 몸이 감정적으로 알고 있는 과거를 정신적으로도 받아들여 더 이상 억압하지 말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중에서
 

기억과 망각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산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혀지고, 과거의 기억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된다. 기억의 오류는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정신적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기 위한 자정 능력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몸으로 기억한 것은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몸은 고통 받고 치유하는 과정의 화학적 반응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은 성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은 그래서 상처받기도 쉽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부모이다.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는 안정과 사랑의 대상이지만 아들에게 아버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대상이다. 이것은 ‘인간의 무의식적 충동과 자아 방어’를 말하는데,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도구로 유용하다. 하지현은 『관계의 재구성』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동성 부모에게서 느끼는 질투와 저항의 관계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로부터 폭행 당한 아들의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

  벤 마이켈슨의 장편소설 『스피릿 베어touching spirt bear』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심리소설이다. 피터 드리스칼에게 끔찍한 폭행을 가한 주인공 콜 매슈는 평소에도 폭력 성향이 강한 15세 소년이다. 그는 감옥에 가지 않을 목적으로 인디언의 치유 방식인 ‘원형평결심사’를 통과하고 알래스카 남동부의 섬으로 떠난다.

  소설은 아버지가 콜을 폭행하는 장면, 알콜 중독으로 남편을 말리지 않는 어머니를 통해 15세 소년의 ‘무의식적 충동과 자아방어’ 기제를 설명하고 있다. 피터를 폭행한 것은 콜의 현재 모습이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콜을 통해 ‘아버지의 폭력 → 몸과 영혼의 상처 → 분노 → 타인과 세상에 대한 폭력’에 이르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콜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 어떻게 이 지독한 슬픔과 분노 그리고 타인의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을까?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대한 자연의 힘

  외딴섬에 혼자 살게 된 콜은 틀링깃 인디언 에드윈 노인이 지어놓은 오두막을 불태우고 희고 거대한 ‘스피릿 베어’를 만난다. 콜은 스피릿 베어를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두르다가 온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극적으로 살아난 후, 보호관찰관 가비의 도움으로 다시 원형평결심사를 요청한다. 스피릿 베어를 통해 끔찍한 폭력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콜은 진정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섬에 돌아온 콜은 스스로 불태운 오두막을 다시 짓고 찬 물에 몸을 담그고 돌을 들고 산에 올라가 언덕 아래로 ‘분노’를 굴려 보낸다.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돌 굴리기는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콜은 외롭고 힘겨운 섬 생활을 통해 자신의 분노와 상처의 원인을 찾고 스스로 치유하게 된다. 작가는 주변 모든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던 콜을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러나 위대한 자연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해지는 법이다. 콜도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작가는 상처의 원인을 ‘아버지의 폭행’으로 단순화시키지 않고 콜이 가진 내면의 슬픔과 분노로 보았다. 더 나아가 자연을 통해 겸손과 정직 그리고 용서를 배우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타인의 고통을 통한 상처의 극복, 그리고 성장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중에서

  2차 피해자인 피터는 결국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가해자인 콜이 사는 섬에 도착한 피터. 두 사람의 동거는 이 소설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도덕적이고 뻔한 결론을 위한 수순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치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콜과 점차 마음을 열게 된 피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극복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분노는 거부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는 에드윈 영감의 말은 콜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준다. 분노가 사라지고 자신과 ‘타인의 고통’까지 이해하고 용서하는 두 소년의 모습은 다른 성장 소설과 구별되는 『스피릿 베어』만의 특징이다. 결국, 콜과 피터의 고통은 견줄 수 없는 것이며,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두 소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부유한 부모를 가졌지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콜은 청소년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또한, 자연을 통해 콜이 상처를 치유하듯 인디언의 전통적 가치는 문명화된 미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연안에 살고 있다는 ‘스피릿 베어’를 통해 우리는 미니애폴리스에 살고 있는 콜의 삶을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나 인과관계의 필연성 등 소설적 완성도의 부족은 콜의 진솔한 고백으로 상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제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어요. 사람들은 두려워서 나쁜 짓을 하는 거예요. 가끔은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죠.” - P.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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