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의 혁명 2 -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인다 신문 읽기의 혁명 2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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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형잡힌 지식인. 사람마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균형을 잃지 않는 통찰력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타자와 세계의 관계망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을 둘러싼 역사적 인과관계와 사회 현상에 대한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토대를 구축하고 나면 종횡무진 누빔과 가로지르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진정한 지식과 혜안은 하루 아침에 얻어지지 않으며 거시적인 관점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지극히 편협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면 역지사지가 가능해지고 똘레랑스가 위력을 발휘한다. 모두 내 생각과 같을 수 없고 판단의 근거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가끔 벽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때가 있다.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세상을 읽는 것은 우리 삶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지난한 고통과 한숨, 좌절과 절망이 기다릴 때도 있고 벅찬 감동과 희망찬 미래를 만날 때도 있다. 그 길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믿음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세상을 읽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신문은 여전히 우리의 의식을 규정한다. 어느 신문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이냐가 문제다. 손석춘은 『신문 읽기의 혁명』1권에서 편집된 신문지면을 해체해서 재구성하라고 주문했다. 신문은 편집이다. 어떤 기사를 선택해서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신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의 내용은 편집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의 2권이 13년에 출간되었다. 1권의 핵심이 ‘편집’이었다면 2권의 중심에는 ‘경제’가 놓여있다.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인다’는 부제는 책 전체를 요약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섹션별로 신문을 구성하는 방법이 보편적이지만 저자는 경제를 통해 정치를 읽어야 한다는 논리다. 경제가 수단이고 정치가 목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신문읽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12월 28일은 UAE에 47조원에 달하는 원전을 수출한 내용이 주요기사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사설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조선일보 사설의 제목은 사설 ‘우리 기술과 정상 외교 기량이 만나 일군 47조 원전 수출’이지만, 한겨레는 ‘원전 수출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력과 경제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 내용과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볼 수 없는 원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는 내용이 그것이다. 경제라는 잣대로 개발과 환경 문제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신문의 관점은 서로 다르다. 이에 대해 오마이 뉴스는 ‘불안한 한국형 원전, 위험까지 수출?’로 표현하고 있으며, 미디어 오늘은 각 진영의 논쟁을 ‘원전수주 반대한 한겨레 폐간하라’로 정리하고 있다.

  경제면을 넘어서야 경제가 보이고 광고를 읽어낼 수 있어야 본격적인 신문읽기가 시작된다. 정치와 경제는 우리 사회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신문의 품격은 결국 ‘진실’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와 경제 논리로 정파적 신문 읽기를 유도할 수는 없다. 그 함정에 빠질 때 독자들은 바보가 되고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혼돈하고 국가의 이익이 결국 누구의 이익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문 깊이 읽기의 세 지층으로 세계화, 민중, 이해관계를 제시한다. 현실적인 신문읽기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오늘 신문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신문을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인터넷 신문의 약진, 신문재벌의 방송진출 등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려면 스스로 학습하는 길밖에 없다. ‘카더라’ 통신에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주권시대의 신문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우리 개개인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 속에서 평생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어 자아를 더 풍요롭게 실현해가는 주권혁명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다. 신문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평생학습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경제생활을 단순히 ‘취업’이나 ‘호구지책’으로 여길 게 아니라 정치생활과 연결 짓는 다리로 신문을 읽으며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 자기를 창조적으로 형성해갈 때, 그때 신문 ‘읽기의 혁명’은 곧 ‘혁명 읽기’다. 그때 신문 읽기는 예술이다. - P. 280



09122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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