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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ㅣ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평점 :
직업선택의 십계
-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얼마 전 이웃 블로거를 만나 즐겁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통과 교감은 오래 된 친구를 찾은 것처럼 유쾌한 일이었다. 그가 다닌 학교의 ‘직업선택의 십계’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어 새삼스럽지 않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종교적 신념이나 특별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직업선택의 기준을 참고할 리 없다. 물론, 선언적 의미가 강하겠지만 지나온 내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엇을 배웠으며 어떻게 살았을까 때때로 돌아보지만,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웠노라고 미화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100년이 넘은 서울의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그가 생각하는 교육과 삶과 세상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책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얄팍한 지식 나부랭이를 배우러 가는 곳이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완고한 대한민국의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박재원과 윤지은이 번역하고 비상교육 공부연구소장 박재원이 해설을 붙여놓은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혁명>을 읽었다. 읽는 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견고한 현실의 벽 때문이었다. 눈물이 날 뻔 했다.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울했다. 나의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치고 싶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이윤창출과 무한 경쟁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교육제도는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념의 문제도 정치적 논리도 이기적 욕망도 이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내 자식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태도와 고등학교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와 직업선택의 첫째 조건이 ‘돈’이어야 하는 미래에서 우리의 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지난달에 수능이 끝나고 지난주에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의 얼굴은 복잡해 보인다. 새학기가 되면 대학 이름과 합격생 수를 적어 현수막을 내건다.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특별히 학과와 이름까지 적어 따로 교문 위에 걸어둔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아이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에게 학교는 패배감과 두려움을 선물한다. 이름이 내걸리지 못한 모든 아이들은 좌절감을 맛본 채 스무 살의 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강요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현실이다. 무한 경쟁 체제인 대한민국의 교육은 1% 승리자를 위해 모든 시스템이 가동된다. 똑같은 머리, 똑같은 교복, 똑같은 공부, 똑같은 목표, 똑같은 생활, 똑같은 꿈!
시험을 향해 짜여진 교육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지에 대해 규칙을 정해버리기 때문에 교육의 본래 목적인 능력향상을 제한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되어버린다. - P. 22
“핀란드의 학교는 잘못하는 아이들을 끌어가긴 하지만 잘하는 아이들은 그냥 둡니다. 왜냐하면 잘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자율적으로 배우도록 키우면 아이들은 교사나 어른을 뛰어넘어 뻗어나간다. - P. 54
우수한 학생들을 따로 모아놓고 가르쳐야만 제대로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주목해야 한다. - P. 55
다른 학생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수월성 교육이 아니라 동반 성장하는 수월성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핀란드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 P. 55
진보적 교육 운동가의 해설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책을 집어 던져도 좋다. 하지만 사교육의 첨병에 서 있는 박재원의 문제제기와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 관찰은 우리에게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해서는 안된다. OECD회원국의 학력을 알아보기 위한 PISA의 통계를 보면 객관적 자료를 통해 각국의 학력과 핀란드 교육의 우수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썼겠지만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월성 교육 문제의 핵심에 놓인 특목고와 외고 사태, 교원평가의 본질과 방법, 대학입시 제도와 대학교육의 문제 그리고 교육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교육 전문가다. 저자가 핀란드 교육 현장을 통해 얻은 것과 해설을 쓴 사교육의 첨단에 서 있는 박재원의 단상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교육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는 능력과 바른 인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수능 성적표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할 말이 없어진다. 혁명이 주는 어감이 싫다면 혁신을 사용하라. 교육혁신은 교실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 핀란드의 모든 시스템을 받아들이자는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우리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091213-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