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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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복’이란 말이 내게 만들어준 이미지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통영여중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청마. 딸 하나를 둔 채, 스물 한 살에 청상이 된 이영도를 사랑하게 된 청마. 그는 철벽같은 현실 앞에 좌절했을까?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그리움에 행복했을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는 기막힌 아이러니는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는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조차 청마의 「행복」에 대한 변주로 들린다.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해가지고 을씨년스런 겨울 하늘과 아파트 지붕의 경계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짓을 바라보는 이 푸른 시간이 어쩌면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루시드 폴의 ‘날개’를 들으며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내다볼 수 있는 이 작은 평화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은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플라톤은 ‘고통이 없는 상태’라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것일 게다. 탁월성을 획득하는 데 아주 불구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종류의 배움과 노력을 통해 행복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작은 배움과 노력으로 성취할 수 것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70년 전에 러셀은 ‘경쟁, 권태, 자극,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 여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이 우리의 곁을 떠난다고 이야기한다. 그에 비해 ‘열정, 사랑, 일, 폭넓은 관심, 노력’ 등이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한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단순하고 간단한 행복론이다. 그러나 러셀의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뻔한 관점으로 말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종교적인 계명에 순종하거나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서는 행복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에 도달한다.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서 벗어나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행의 원인을 ‘세상’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의 생존을 지탱해주고 나에게 행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외부세계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통한 교류 없이는 행복한 삶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행복한가? 우리는 한 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평생 우리를 지켜줄 행복에 대한 관점을 만들고 가치관을 세우는 일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네모난 틀에 갇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경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수다스런 말로 행복해지는 법을 달콤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깊은 자기 성찰과 세상에 대한 통찰로부터 길어 올린 사색의 결과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 P. 75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걱정이나 불안이다. - P. 82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이다. - P. 119


  문장 하나하나가 벽에 붙여두고 음미할 만한 금언처럼 읽히는 책이다. 수학자이며 철학자로 행동하는 지성으로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세상의 모순과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냉철하게 인식했던 20세기의 가장 명민한 인간이었던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이성과 감성을 갖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타인과의 관계,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나에게 러셀이 전해주는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조건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하루에 3천 단어 이상을 사용해서 매일 글을 썼다는 러셀의 글은 깊고 아름답다. 나를 돌아보고 삶을 반성하게 하는 『행복의 정복』은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깊은 겨울,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올바른 기분 전환 방법은 사고 작용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거나 적어도 현재의 불행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 P. 246


09120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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