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인 6색 인터뷰 특강 인터뷰 특강 시리즈 6
금태섭 외 지음, 오지혜 사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는 다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림 (화:畵)
재앙 (화:禍)
신발 (화:靴)
화 (化)
  변화
  합계의 옛말
화 (火)
  화요일의 준말
  불
  노여움
일본을 화(일본어: 和 와[*])라고 표현한다.

  위키백과에서 ‘화’를 찾아보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웃고 또 화를 낸다. 나는 오늘 몇 번이나 화를 냈을까? 몇 번이나 웃었을까? 사람이 70까지 산다고 할 때 화내는 시간은 약 2년이라고 한다. 웃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에 열 번 웃으면 약 5분, 평생 88일 동안 웃는다고 한다. 석 달도 안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울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창간 15돌 기념 인터뷰 특강이 벌써 여섯 번째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인터뷰 특강을 듣지는 못하고 읽고 있다. 시대정신을 하나의 주제로 뽑아내고 그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의 특강은 내가 지금 여기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면하고 싶고 부끄러운 현실일 수도 있지만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오히려 용기있는 행동이다. 올해의 주제는 ‘화’다. 얼마나 화나는 일이 많은가? 눈감고 귀닫고 생각하지 않고 살면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내게는 그런 바탕이 없는 것 같다. 작년 5월부터 뉴스조차 끊어버리고 TV를 보지 않고 살지만 신문과 인터넷 뉴스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절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마음 편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살수 없는 마음밭을 타고 태어난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이다.

  공자는 『論語』 제 13편 자로(子路)
  자공이 묻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불현 듯 생각나 먼지 묻은 논어를 꺼내 뒤적여 찾아낸 구절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기막힌 가르침.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를 외치지만 그 말은 적당한 타협과 비굴함을 은폐한 말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개인적인 불이익의 감수를 의미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새삼스럽게 공자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는지 아니면 ‘화’를 참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자인 진중권은 이제 대학 시간강사 자리에서 쫓겨났다. 3월에 특강을 할 때만 해도 교수라고 불리고 있으니 현실은 시시각각 ‘화’를 돋우고 있다. 윤도현과 김제동이 짤리고 이제는 손석희도 오락가락이다. 식물인간이 아니라 식물TV가 될 모양이다. 어떤 정권이든 언론을 길들이고 싶지 않겠나마는 각본 없는 코미디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세상을 버리고 산속에 칩거했던 선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가는 것은 내 성격의 결함 탓이거나 아직도 현실에 적응하지 소아병적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중권은 ‘대중의 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짚어준다. 대중의 분노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분노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여 공적인 분노의 힘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은 아닌가?

  정재승은 우리 뇌에서 ‘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디케의 눈』을 통해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했던 금태섭은 ‘사형제’를 분노의 법으로 규정하며 그 실태를 통찰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통해 만나보았던 홍기빈은 ‘돈’이 불러오는 ‘화’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안병수는 ‘화난 음식’에 대해 고발한다. 마지막 주자는 『건투를 빈다』의 김어준이다. 서민들의 화내기인 패러디와 풍자에 대해 말한다. 웃으면서 화내고 자기객관화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특강을 끝맺는다.

  여섯 명 모두 책으로 먼저 만났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또다시 책으로 만나 아쉽기만 하다.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특강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2009년을 하나의 주제어로 정리하면 내년의 주제는 무엇이 될 것인지. 화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의 화가 아니라 공적인 차원의 화가 될 때 문제다.

  개인적 차원의 고민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화’가 훨씬 더 치명적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회적 차원의 화는 대책이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경우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후자의 경우가 건강을 해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에게 매우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화내고 웃는 일이 더 많은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면 오늘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091013-0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