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노래한다 창비청소년문학 20
권하은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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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의 시기. 진부하고 습관적인 표현이지만 청소년기를 우리는 그렇게 표현한다. 잔잔한 수면에 물방울 하나가 잔을 넘치게도 하고 순간적으로 아름다운 왕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에릭슨은 이때를 ‘결정적 시기’라고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모든 것에 도전할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사춘기는 단순한 생각의 봄이 아니라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 2의 탄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민과 방황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런 시기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의 부조리에 눈에 띤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되고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존재가 <변신>의 벌레처럼 하찮게 느껴져 비참해지고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지 못해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모두 그 시절을 겪었으면서 어른이 되고나면 시치미를 떼는 특징이 있다. 세대가 바뀌어도 부모나 선생님이 되고나면 자식과 학생들에게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를 지겹게 반복한다.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세상에서 배운 삶의 테크닉과 경쟁의 질서를 일방적으로 주입한다. 말 잘 듣고 통제에 잘 따르며 반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사람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한다. 그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으려하고 어른의 기준과 잣대로 재단하는 버릇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빵틀에 밀가루 반죽을 집어넣듯 모두 같은 모양과 맛을 내려한다. 대한민국 학교의 빵틀은 모두 똑같다. 부모들의 생각틀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질식하지 않을까? 정말 묻고싶다. 국영수만 잘하면 행복해지고 잘 살게 되는거냐고?

  권하은의 <바람이 노래한다>는 아니라고 말한다.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쪽 팔이 없는 소주, 어머니 없이 주정뱅이 아버지와 함께 사는 석준 그리고 유복한 목사의 딸로 시골에 전학 온 주인공의 만남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렵지만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 판단한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범적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사춘기에 겪게되는 첫사랑의 애틋함을 다룬 소설도 아니다. 작가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삶의 길을 찾고 있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어떤 면으로 모든 아이들은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든 경제적 능력이든 우정이든 자존감이든 완벽하게 조건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딘가 모자르거나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인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목적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상처받은 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거품과 과장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뻔한 결론이나 교훈을 들이대지도 않고 아름답고 예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생활을 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첫 소설이기 때문에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지만 후속작을 기대할 만하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과 다른 환경, 시기,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특별한 존재다. 홀로서기가 불가능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기도 힘들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는 많은 작가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 소설은 물로 만나 불로 헤어지는 주인공들의 관계가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석준의 죽음으로 끝맺는 결론 때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과 관계의 양상이 어른들의 그것처럼 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프게 그려진다. 우정과 사랑이 전제되어 서로를 위해 희생하지만 결국 이들의 생은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단순히 비극적 세계인식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과정과 현실을 희망적으로 포장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과 희망이 아니라 방황과 좌절의 과정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식을 현실감있게 보여주는 소설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소설은 현실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보는 도화지같은 역할을 해야한다. 진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삶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읽어낼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씩 더 자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존재하는 법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며 부모의 말도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소설은 어디 없을까?


09101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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