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빠’가 되었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끊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는 신비로움과 살아 꿈틀거리는 한 가녀린 존재에 대한 애틋함보다 내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이 세상 모든 아빠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은 건강한 아이를 만나고 난 후의 개인적 소회에 불과하다. 기형이나 장애아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이나 생활을 우리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테리 트루먼의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는 매우 충격적인 제목의 청소년 소설이다. 외국 작가의 소설은 우리와 다른 성향과 문화적 기호로 인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중증 장애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어느 나라 부모든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동반한다. 단순하게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의미다. 장애인 문제는 복지국가를 향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더불어 함께 치료하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과 배려가 필요하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만 장애아를 키우는 일은 부모의 입장에서 평생의 업보가 된다. 또한 부모가 죽으면서도 마음 편하지 못하다. 그 아이의 나머지 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고통받게 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과 가족의 고통은 물론 사회적 편견과 시선까지도 극복해야하는 이중고를 겪게된다. 외모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선천성 장애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장영희도 평생 장애와 싸웠다.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넘어져 오른손을 기브스한 채 두달만에 왼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하시는 분도 뵈었다. 하물며 평생 신체의 일부가 불편하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자. 더구나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한 지적 장애의 경우는 가족이 거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한다. 아무리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진다해도 기본적으로 부모가 짐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신경숙의 <외딴방>처럼 실제 작가의 경험이 녹여낸다. 이 소설은 후자에 가깝다. 작가 테리 트루먼에게는 ‘헨리 쉬한 트루먼’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중증 장애 아들과 멀쩡한 아들이 있다. 작가의 직접경험에서 길어올린 소설의 진정성은 어떤 감동과도 비교할 수 없다. 단순히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목처럼 섬뜩한 이야기지만 그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숀이다. 열네살 남자아이에게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누나가 있다. 단란한 한 가정이 숀에 의해 어떤 고통을 받는지 실감나게 그려낼 것이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소설의 화자는 바로 중증 장애아인 숀이다. 숀의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고 세상을 말하는 방식은 낯설지만 신선하고 재미있게 그려진다. ‘숨겨진 천재’ 숀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뛰어난 지능과 남다른 유머감각을 가진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이 소설은 장애의 원인과 대책을 찾기보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숀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아이로 등장한다. 특히 아버지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고 아버지가 쓴 모든 시를 감동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숀의 장애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다. 단지 힘겨운 삶의 고통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설명하는 방식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소설에는 실제 두 살짜리 아들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킨 비정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를 인터뷰하고 TV에 출연해서 숀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 숀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킨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받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말을 옹호하는 숀의 아버지를 보고 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 장애를 극복한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가끔 뉴스에서는 사회적 편견이나 역경을 딛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장애인들의 삶이 소개된다. 그 곁에는 항상 헌신과 희생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장애가 있는 자식에게 바친 부모가 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신체가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그 가족들의 생활은 어떤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전제된 상태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의 끝부분은 열려있다. 아버지와 처음으로 대면한 숀. 아버지의 결정이 무엇이든 그리고 숀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결과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의 살아온 과정과 삶의 흔적들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어떠할지는 모든 독자가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에는 어떤 장애가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091008-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