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 - 친구와 적에 대한 16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19
존 업다이크 외 지음, 달린 매캠벨 외 엮음, 이은선 옮김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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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 때문에 세계일주 후에 연락을 한다는 오래된 친구의 문자 한통. 아침에 느닷없이 재미있게 늙어가냐는 문자를 받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녀석의 직장은 우리집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불현 듯 생각나면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전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워낙 바쁘게 사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도 어색해질 때가 있다.

  이제 우정이라는 단어는 낡은 앨범 속에 숨어사는 친구들의 옛 이름이다. 부대끼고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주로 여행을 갔다가 음표 모양의 풀꽃을 모아 붙인 편지를 새벽에 우리 집 우체통에 넣고 가던 친구에게 온 문자 한 통이 하루 온종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동성 간의 사랑을 우정이라고 표현한 어느 작가의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라는 도발적인 질문의 책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타인을 통해서다. 친구와 가족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나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지를 안다는 것은 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성찰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이 나의 전부일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눈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뚜렷한 기준이 될 만한 것이 친구다. 친구의 직업이나 성격이 아니라 어떤 친구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해 보자.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존 업다이크를 비롯한 열 다섯명의 미국 작가의 단편을 모아놓은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는 ‘우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여러 명의 작가가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냈는지 그들의 작품 중에 선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친구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스무 살이 넘어 제각기 다른 삶의 방향을 찾고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면서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진다. 심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생활의 차이를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만난 친구와 그 이후에 만난 친구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감정이 앞서고 이성보다 행동이 앞섰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했던 친구는 무모함까지 받아들여준 기억을 공유한다.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관계가 세상에는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스물 살 이후의 친구 관계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는 수식어는 염두해 둘 필요가 없다. 다만 짤막한 단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음미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에리 브래드버리의 ‘이럴수가’는 친구와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별하는 모습은 유년시절에 헤어진 친구들을 떠오르게 한다. 연인이든 친구든 이별의 아픔은 영원한 문학의 주제가 되어왔다. 한 인간의 성숙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처럼 여겨지는 이별은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그 대상과 무관하게 ‘고독’와 ‘외로움’의 경계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친구가 시간이 흘러 연인이 되기도 한다. 주디스 오티스코퍼의 ‘미국사’, 존 업다이크의 ‘악어 떼’, 기시 젠의 ‘바뀐다는 것의 의미’에 등장하는 친구는 어린시절 짝사랑 하던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짐이 되는 친구, 나이와 계층을 뛰어넘는 우정 등 다양한 ‘친구’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처럼 다양하게 나열하고 있다.

  한 가지 당황스런 점은 장편에서 발췌한 경우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하고 다양한 관점과 흥미를 위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황당한 편집이다. 쉽고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는 작품도 많다. 이 책은 현대 미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들이 보여주는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내는데 목적을 두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또 한 작가를 깊이 있게 읽기 시작한다면 터미널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 그 나이,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삶의 일회성. 돈이나 권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 관계맺음, 감성, 열정 - 그 모든 것을 위해 잠시 침묵한다.


091006-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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