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간에 옛글읽기 문학시간에 읽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문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선인들의 옛글조차 원문으로 읽을 능력이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번역본을 꼼꼼하게 고르는 수밖에. 옛글을 읽는 즐거움은 시간을 견뎌낸 책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대부분 조선시대로 한정되긴 하지만 당대를 살아냈던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시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을 하게 된다. 마음으로 읽는 글은 지식과 교훈보다 깨달음과 지혜를 전해준다. 좋은 옛글을 읽는 것은 조상들의 지혜를 전수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낸 <문학시간에 옛글 읽기>는 고전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글들이 엄선되어 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옛글을 읽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에 잘 읽지 않게 된다. 그 편견의 원인은 교과서다. 국정교과서로 국어를 배우고 문학교과서는 검인정 도서로 18종이나 된다. 내년부터는 중학교 1학년부터 국어교과서도 23종 검인정 시대를 맞이했다. 각급 학교에서는 교과서 선정이 한창이다. 교육과정이 바뀌고 새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검증된 작품이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중에 바탕글이 선정된다.

  국어시간에 문학작품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이 고루 갖춰져야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모든 공교육은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고등학교와 중학교, 초등학교는 이제 경쟁을 내면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운동부를 없애고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전학을 권유하고 초등학생에게 보충 수업을 시키는 당황스런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모두 손을 놓고 불구경하듯 서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의 책임이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제대로 된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난감하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진리는 변함없이 시간을 뛰어넘는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그리고 고전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사람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아이들에게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소리지르는 부모님,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생님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건방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책을 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가르치는지 나는 궁금하기만 하다. 능력있는 분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을 때가 많다.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는 사물과 현상을 통한 깨달음, 2장에는 어떤 일의 내력을 밝힌 글과 여행기, 3장은 편지글, 4장은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담은 글, 5장은 세상일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 6장은 삶과 세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드러낸 글이 담겨있다.

나는 비로소 사람을 기르는 방도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먹을 것을 잘 먹여 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잘 이끌어 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눈먼 암탉이 병아리들을 기르는 것을 보고 사람을 기르는 도를 깨달았다. - P. 275 할계전(瞎鷄傳)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 손꼽기도 어렵다. 짤막한 글들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읽기 좋은 책이다. 그 가운데 나는 할계전의 한 토막을 적어본다. 애꾸눈이 된 어미닭이 병아리를 기르는 방식은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한계이지만 아이를 기르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주옥같은 옛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슴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먼저 읽어보고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권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물론 옛글이라면 무조건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을 위해서도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각 장 뒤에는 생각할 문제가 몇 가지 정리되어 있다. 사유의 깊이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생각을 넓히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살아있는 문학 교과서가 될 것이다.


090915-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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