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침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그리고 가난은 감출 수가 없다고 한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필요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가난을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굳이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다만 삶의 방식과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겠지만 가난을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게으름과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는 관습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의 문제이고 구조적 모순이며 계급 구조의 문제이다.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에서 가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돈을 벌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만 그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과정이 과연 공정하기만 할까? 언제든 노력만 하면 지금 내 부모와 나와 내 자식이 가진 가난의 고리를 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처럼 다인종 국가에서 흑인은 어떤 존재일까?

  프랑스의 좌파 사회학자들은 가정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나 생득적으로 습득하는 문화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언어 능력을 공평하는 측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언어영역’ 시험은 이미 태어나는 문화 자본과 성장 과정에서 습득하는 환경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주목할 만한 문제제기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문화적 상징 자본이 다른 상태에서 학습은 이미 불공정한 게임인 것이다. 이 사회학자는 개인의 노력이 시작되면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수학’ 과목에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평등’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사회적 환경들은 결코 공평한 시스템과 거리가 멀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물론 사교육 문제가 놓여있고 입시 제도의 문제가 버티고 있다.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은 자연스럽게 <괴짜 경제학>을 떠오르게 했다. 책장을 여니 <괴짜 경제학>을 쓴 저자의 추천사가 책머리에 놓여있다. <괴짜 경제학>은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역작이다. 상식과 통념을 깨는 경제학자들의 세상 읽기에 관한 책이다. 유사한 제목을 달고 있는 <괴짜 사회학> 또한 통계와 연구실을 뛰쳐나온 사회학자의 거리 사회학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순진한 중산층 대학원생 수디르 벤카테시는 거리로 나선다. 오로지 공부를 위한 목적으로!

  이제는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되어 있는 저자가 경험한 일들은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미 사회학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재밌는 일이다. 이 책은 기존의 사회학 서적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래서 ‘괴짜’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통계나 현상을 분석하고 질문지나 면접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책은 빈민가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간 사회학자의 생생한 기록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이고 생생한 기록이어서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진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이 책은 그들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지침서가 되겠다. 우리와 다른 인종 문제는 뿌리깊은 사회 문제다. 정책적으로 풀어낼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도 없는 듯하다. 10년 전의 경험과 기록이니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편견이나 사회적 차별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나가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빈곤 문제는 무엇인가? 이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88만원 세대로 명명되는 청년 실업 문제, 사교육비를 통한 부와 계급의 재생산, 양극화의 심화 등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갈등과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돌아볼 때 과연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들의 문제와 고민을 다루고 있는 학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숫자 놀이를 하거나 설문지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한 신선한 도전과 낯선 즐거움을 주는 책이 바로 <괴짜 사회학>이다.

  미국의 시카고는 최악의 빈민가로 손꼽힌다. 로버트 테일러 홈스는 고층 공영 주택단지이지만 방대한 공터에 의해 도시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이곳에는 경찰이나 구급차 조차 오지 않는다. ‘빈곤의 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비참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질서에 의해 삶을 이어간다.

  저자는 청년 사회학자로서 우연히 설문 조사를 하러 왔다가 마약 판매 갱단 블랙 킹스의 보스와 만나게 된다. 사회학자와 갱단의 보스 제이티는 그후 10여 년 동안 어울리며 빈민가 주민들을 면담하고 동고동락을 함께한다. 객관적 사회학자로서, 때로는 그들의 심정적 동조자로서 갈등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도 간간이 배어 나온다. 학자적 신념과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혹은 제이티와 나눈 우정과 신뢰 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다른 주민들과 나눈 관계만큼이나 현실적이고 흥미롭다.

  남겨진 문제는 이런 접근 방법이 실제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냐이다. 단순히 현상만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첫 번째 순서일 수 있겠지만 한 사회학자의 호기심이나 용기에 대한 박수로 그칠 수만은 없다. 사회학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드러난 문제점과 원인의 분석과 기술은 필수적이다. 이 책에는 그것이 없다. 저널리즘을 위한 책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단순한 현상의 분석에만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가난은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 어디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하는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에게도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090728-0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