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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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생각해보아도 나의 아나키즘 성향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직접 행동direct action’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직업과 상황의 한계를 핑계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은 나의 게으름 탓이다.

  나는 수평적 인간관계에 익숙하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나이 차이와 무관하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직책이나 직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며 생활하는 버릇 탓인지 고개가 뻣뻣하거나 권위적인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면서 토吐가 나온다. 우리 사회에는 워낙 그런 사람이 많고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권력과 권위의 힘은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고정된 사회제도나 체제에 순응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 중도 우파에서 중도 자파에 이르는 가장 폭넓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때때로 정부에 대한 지지와 불만을 동시에 가진다. 그 기준은 물론 개인적인 이익이다. 어제 강변북로의 한 아파트에 내걸린 초대형 현수막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독재자로 성토하고 있었다.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 정도 아파트의 주민들이라면 대부분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에 복무하는 투표 행위와 투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크로포트킨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중간 계급, 즉 부르주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체제가 민주적인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대표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대표하고 대다수 국민의 생각을 무시한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J. J. Rousseau의 말처럼 우리는 선거를 할 때에만 자유롭다. 그리고 대표를 통해서만 말해야 한다는 원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대표가 없는 사람들은 말을 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사회가 발달하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질수록 대의제 민주주의는 근원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크로포트킨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 P. 85

  작금의 현실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을 떠나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4년 동안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다. 선거철이 되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나 사회의 발전 방향, 정책과 미래 사회에 대한 큰 틀을 고민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습관처럼 익숙하게 한 표를 던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조직적으로 언론법을 손보고 전교조를 죽이고 인권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4대강 개발을 통해 대기업에 이익을 몰아주는 정부는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과연 대다수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다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정부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변할까? 노무현 정부는 대다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 국가라는 존재는 정부라는 단체는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이다. 도대체 국가와 정부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가? 그들은 왜 우리의 권리를 마음대로 제한하며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는가? 언제부터였을까? 21세기에도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또 다시 파시즘의 악령이 부활하는 조짐이 보이는 것처럼 힘과 권력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고 굳건하게 계급적 이익에 충실한 그들을 보며 우리는 왜 다시 아나키즘을 떠 올리는가?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작지만 큰 고민거리를 제공해 준다.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가 아나키즘에 대한 성실하고 재미있는 해석이라면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책세상의 ‘Vita Activa실천하는 삶’ 개념사 시리즈다운 책이다. 적은 분량에 개념에 대한 이해와 요구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어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기획시리즈들의 공통된 한계인 분량의 문제는 곧 깊이의 문제와 연결된다. 아나키즘에 대한 백화점식 나열과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머레이 북친, 신채호 등 아나키스트들의 저작을 통한 소개 등이 입맛을 돋우지만 간략한 소개나 안내 정도에 그치고 있어 오히려 아쉽다.

  4장 진화하는 아나키즘, 논쟁의 역사와 5장 아나키즘의 길 아나키스트의 길은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들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지식은 무익하는 말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적 유용성을 가진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만하다. 이론적 토대가 없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과연 실천하는 삶을 통해 나와 이웃들이 연대하고 함께 같은 꿈을 꾸며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변화와 발전을 바라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나키즘을 실현하는 방법도 다르게 발전해 왔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절대 선이며 진리가 아니라는 것 만큼이라도 인정해야 새로운 논의나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으며 나 혼자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말자. 그래서 아나키즘은 자유와 자치 그리고 연대를 내세운다. 우리 사회에서도 작은 공동체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다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아니 모두 꿈이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혹시 당신의 꿈은 부자인가?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세상도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렵지도 않고 불가능한 미래도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바로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09072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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