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밥이냐 반찬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는 식당의 경우를 살펴보자. 군대를 갔다 온 혹은 군 복무 중인 수많은 남성들은 식판 위에 산처럼 밥을 퍼 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배고픈 사람들은 오늘도 구내 식당, 학교 급식실에서 양껏 밥을 담는다. 그리고 자신이 먹을 만큼 반찬을 담기 시작한다. 누가 떠주면 어쩔 수 없이 정량을 받아야 하지만 사람마다 식성과 식사량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떠 먹는 좋을 것이다. 어찌됐든 대부분의 경우 밥과 반찬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실제 낭비되는 음식의 양은 엄청나다. 우선 개인적으로 살펴보면 음식을 많이 남긴다. 배고픈 상태에서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먹을 만큼의 밥을 먼저 담고 나면 배를 채울만한 고기나 탕수육, 잡채 등이 반찬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그러면 밥과 반찬 중 한쪽이 남거나 둘 다 남기 마련이다. 이때 배열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반찬을 먼저 배열하고 밥을 맨 마지막에 담도록 하면 남기는 양이 상당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 대부분 사람들이 선호하는 반찬이나 배를 채울만한 종류의 반찬을 앞쪽에 배치하면 버려지는 음식의 양이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넛지nudge>를 읽으면서 떠 오른 생각이다. 이 책의 서두 부분에서 반찬의 높이와 배열 순서에 따라 특정 음식의 소비를 현저하게 줄이거나 늘였다는 사례를 보고 마찬가지 원리로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았다. 사회과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람’은 참 재미있는 동물이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각과 행동 패턴 속에 숨어 있는 비밀들을 풀어내는 일은 특정 학문 분야의 연구 주제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은 경제학자 둘이 공저했다.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괴짜 경제학>이나 작년에 출판되어 반향을 불러 일으킨 <블랙스완>, 엊그제 읽은 <야성적 충동>에 이어 <넛지>에 이르기까지 최근 경제학은 행동 경제학의 열풍이다. 완전한 이성을 갖춘 경제적 인간이 일관성 있는 경제 활동을 벌인다는 전제 자체를 거부한 이 책들은 심리학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경제 행위를 점검하고 있다.

  ‘넛지nudge’는 ‘눗지noodge’와 다르다. 눗지는 ‘성가신 사람, 골칫거리, 끊임없이 불평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지만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를 찌르기라는 말이다. 주의를 환기하거나 부드럽게 경고하기 위해 상대에게 넛지를 행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눗지와 전혀 다르다. 이 책에서는 물론 눗지가 아니라 넛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연 넛지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경제 활동에 임하는 사람은 천재이면서 바보라는 가정 하에 이 책의 논의가 시작된다. 사람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과 그저 평범한 인간(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전자를 ‘이콘(Econ)’, 후자를 ‘인간(Human)’이라고 부른다. 이콘은 좌뇌를 주로 사용할 것이고 인간은 주로 우뇌를 사용할 것이다. 이콘은 숙고 시스템을 사용하고 인간은 자동 시스템을 사용한다. 넛지는 인간을 위해 필요하며 잘못된 혹은 당연한 자동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수정하기 위해 필요하다.

  인간은 어림짐작과 비현실적 낙관주의에 익숙하고 100원의 이익보다 100원의 손실을 훨씬 더 고통스러워한다. 현상유지 편향을 갖고 있다. ‘너의 가슴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며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진보적 성향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는 나같은 인간에게도 현상유지의 보수적 편향은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액자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프레임이 어떠하냐에 따라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술을 앞 둔 환자에게 ‘100명 90명이 5년 이상 살았다’와 ‘100명 10명이 5년 이내에 죽었다’는 말을 해 준다고 할 때 환자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이콘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넛지의 활용을 주장한다.

  넛지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오류, 행동의 패턴을 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는 없는지 점검해 보자. 인센티브와 다른 넛지의 세계는 디폴트에서 시작한다. 최소 저항 경로를 따라가며 피드백을 주고 매핑을 통해 행복을 이끌어주는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준다. 저축과 투자, 연금 특히 모기지,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 사용의 실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멍청한’ 판단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되면 ‘이렇게 살다 죽게 내비둬!’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아니 인간은 그런 동물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넛지가 필요하다. 사회보장, 의료보험, 장기기증, 환경 등 경제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아니라 이콘이 필요하다. 관심을 갖지 않고 혹은 모르고 지나치는 일상들 속에 누군가 팔꿈치로 슬쩍 찔러준다면 어떨까? 기분 나쁘게 간섭하고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툭치고 지나가며 가볍게 윙크를 날려준다면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고려해보지 않을까? 저자들은 이것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 부른다. 자유에 대한 개념과 한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따라 이념의 대립으로 비화할 수 있으므로 경제학자인 두 사람은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절충하고 있다. 그 접점에서 찾은 개념이 바로 넛지다.

  책의 말미에서 반대 의견들까지 정리하고 있다. 정성스럽고 꼼꼼한 사례 조사와 그 적용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한밤의 세례나데>를 본 것을 제외하고 꼬박 이 책에 코를 박고 주말을 보냈다. 400페이지 넘는 분량이지만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재미있고 정확하게 분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다양한 분석과 해법들 속에서 이 책이 빛을 발하는 것은 결국 어떤 문제도 이콘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09071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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