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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관점의 차이는 문제의 원인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아낸다. 이성적 동물이라고 굳게 믿는 인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보일 때가 많다. 얼마나 본능에 충실하며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는지 알고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소위 지식인이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도 예외가 없다. 이론과 실제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며 학문적 관점과 실제 생활의 거리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경제적 동물인 인간이 이익을 취하는 장면이나 물건을 구입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얼마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알 수 있다. 조지 애커로프와 쉴러가 공저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은 이러한 인간의 특성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은 케인스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인간이 얼마나 비경제적 본성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두 저자는 최근에 벌어진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야성적 충동’이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요한 장면들을 분석하다보면 다양한 이론적 잣대가 사용되고 경제적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그 실마리는 인간의 이러한 본성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당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 세계 언론의 격찬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평가가 어찌됐든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표준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해석하는 책이라는 장하준의 추천사가 아니라도 경제는 ‘심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간단한 말을 분석하고 있다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한다. 하지만 대부분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전제로 한다. 논리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당연히 어느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저자는 우리의 경제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학을 변화시키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새롭고 신선한 시각을 ‘야성적 충동’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통틀어 ‘야성적 충동’이라고 말했지만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경제불황의 원인이나 금융위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찾아낸 용어는 아니다. 이 책의 1부에서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 착각, 이야기’라는 충동의 다섯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이것들은 2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왜 경제는 불황에 빠지는가?’, ‘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등 여덟 가지 경제위기에 대한 전제조건이 된다. 감수자의 말대로 여덟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1부를 읽으면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저자들은 비논리적인 선택과 우연, 과대 포장, 거짓말, 비도덕적 성향 등 여러 가지 다양한 근거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야성적 충동의 본질적 속성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 충동으로 불황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한다. 여덟 가지 질문과 대답 속에는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원인이 달라지면 당연히 대책도 달라진다. 경제의 문제는 바로 사람들의 ‘야성적 충동’에 기인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그로 인한 대책과 위기극복 방안들이 드러날 것이다.
경제의 작동원리가 단 한 가지 원인으로 요약될 순 없다. 다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은 최근의 경제 위기를 풀어내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마땅하다. 설득력 있는 분석과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경제 이론과 설명들이 친절하지 않아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고 저자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잘 모르겠지만, 거시 경제학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나 철학의 문제와 닿아 있는 듯하다. 심리학이나 역사학과도 무관하지 않을 테니 인문학적 관심과 자연과학적 척도가 결합될 때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대안들이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현실 경제를 풀어내고 사람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이바지해야함은 물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신자유주의는 아니다. 인류가 검토해 온 다양한 제도 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가장 근접한 제도가 자본주의라고 인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자유주의가 왜곡되어 시장 제일주의, 친기업주의가 될 수는 없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이 정책과 입안자들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하지만 그 부작용의 피해자는 항상 노동자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들의 대안을 고민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경제는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숨 쉬는 공기가 되었으니 피해 갈 수는 없다. 원론적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꿈만 꿀 수도 없다. 실현 가능한 제도의 운용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기대한다. 우리에겐 누가 있으며 어디에 기대야 할 것인가? 거시경제의 문제를 일반인들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이 냉소를 만들지는 말아야겠다.
090710-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