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글을 쓰지만 목적은 다르다. 아무나 글을 쓰지만 관심의 정도는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글이 있고 자발적으로 쓰는 글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글을 쓰지 않거나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독해력은 단순히 문자나 언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글 읽기 능력과 구별되는 다양한 해석 능력도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과 읽고 쓰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목적이 다르고 관심사가 제각각일 수는 있지만 읽고 쓰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들어 글쓰기에 관한 책이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대입에서 논술고사가 중요한 관문으로 부각되면서 ‘논술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초등학생용 동화책에도 ‘논술대비’라는 관용구가 따라 붙는다. 고전과 명작들을 짜깁기 하거나 요약본이 아닌 생략본 시리즈를 발간하며 청소년에게 독서의 즐거움과 고전의 참맛을 훼손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들도 모두 ‘논술대비’다. 홈쇼핑에서도 책을 판다. 물론 ‘논술대비’용 도서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논술대비가 붙은 책이 모두 나쁜 책은 아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논술을 잘 하기 위해 따로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입시와 논술은 괴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문제를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들에 대한 범죄다.

  입시나 각종 시험에 대비한 글쓰기는 관점과 방법이 사뭇 다르다. 정해진 규칙과 틀이 있고 ‘선발’을 위한 채점자를 위한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 즐거움과 무관한 글쓰기는 실용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야 한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는 이와 같은 글쓰기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다. 소설가의 글쓰기 수업은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강좌라는 사실만으로도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 취향이지만 직접 강좌에 참여하지 못하는 한을 풀기위해 출판되는 책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 책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해 깊이있게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한다. 작가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강자는, 진리를 단지 알고 있는 자가 아니라 좋아하고 즐기는 자여서, 자신보다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보면 참으로 측은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상적 · 도식적 · 윤리적 · 일상적 · 상투적 ·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비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에 저항하고, 기성질서와 언어를 전복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니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의 언어다. - P. 238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창조적 언어의 사용이다. 일상적 언어와의 만남이 아니라 명징하고 새로운 의미 부여가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서 사용하는 일이 글쓰기의 시작이 아니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고 감수성을 살린 표현과 언어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글쓰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글쓰기의 유일한 도구이자 무기인 언어 사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글쓰기의 즐거움은 맛볼 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선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성적 태도로 지금까지 습관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부분들에 대한 관심과 지적은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근본적인 목적이나 방향 그리고 언어와 문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글쓰기가 시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과정에 이르는 지난한 방법들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실제 지도하는 과정에서 마주쳤던 습작들을 난도질하며 함께 읽고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로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글쓰기 강좌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런지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책장은 쉽게 넘어가고 책을 읽는다기보다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천천히 운전하는 것과 여유있게 운전하는 것, 신속하게 운전하는 것과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 열심히 읽는 것과 초조하게 읽는 것, 깐깐하게 공부하는 것과 소심하게 공부하는 것, 치열하게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 쓰는 것,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고지식하게 고민하는 것,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과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 게으르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과 여유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을 나누어 분별하기가 좀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가 갈린다고 했다. 숨 한 번 돌리자 사랑이 욕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욕심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숨 한 번 돌리는 사이에 무욕이 게으름으로 변하는가 하면 순정이 맹목으로 변하기도 한다. 딴엔 의식적으로 치열하게 열심히 읽고 썼지만, 그것이 다만 조급한 욕심에 불과한 것일 수가 있어서, 마치 <잠입자>의 ‘고슴도치’처럼, 스스로 속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참으로 자주, ‘열심히’와 ‘조급히’를 혼동하고, ‘최선을 다해’와 ‘욕심을 다해’를 혼동한다. ‘자기만의 생각’과 ‘자기만의 고집’을 혼동하고 ‘독장적인 글쓰기’와 ‘독선적인 글쓰기’를 혼동한다. ‘고독한 창작생활’과 ‘고립된 창작생활’을 혼동한다. - P. 365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전혀 다른 인생을 만든다. MBC를 손보기로 마음먹은 조선일보를 읽다보면 MBC는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할 방송국이다.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오해하고 개인적 감정 때문에 온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방송이다. 하지만 <신문읽기의 혁명>을 읽어보고 집단지성에 소개된 ‘오마이 뉴스’를 살펴보면 또 다른 시각과 상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문은 쓰레기다. 언론을 왜 사회의 공기라고 했을까? 질식사 하지 않으려면 판단력을 갖춘 뇌와 말할 수 있는 입과 행동할 수 있는 발이 필요하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위한 손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 사소해 보이는 차이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

  저자는 에필로그 ‘본질적 감수성’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각과 행동의 거리. 너무 늦은 행동은 없다. 미래를 위해서 모든 행동은 빠른 것이다. 다만 후회만이 우리의 뒤를 따를 뿐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우리들의 본능적인, 본질적인 감수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 보다 많은 이웃과 건강한 사회를 얻기 위한 글쓰기가 참된 글쓰기다. 굶주린 아이들의 급식비를 깎기 위해 놀리는 세 치 혀가 아니라 그들의 만행을 역사에 기록하기 위한 글쓰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책읽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는 혁명이며 행동이고 우리들의 진정한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나를 이런저런 망상에 빠트리는 이 문구가 너무 좋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고병권, <추방과 탈주>, 그린비, 2009, 194쪽)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첫 번째 행동은 아마 꿈을 꾸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장 빠른 첫걸음은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 P. 384

  혼자서 꾸는 꿈은 한갓 공상에 불과하지만, 모두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오늘도 믿고 산다.


090625-0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