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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망각이 없다는 인간은 살 수 없다. 시간 앞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 없는 것처럼. 오늘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평생을 혼자 살아야 했던 사람이 어디 한 둘 일까마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40일간 뇌사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동생이 깨어났을 때 담당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사고 당일부터 며칠 동안 앉은 자리에서 물 한 모금 목에 넘기시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눕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지켜야하는 일이 더 큰 고통이었다. 일생을 살면서 기적이라는 말을 실감한 것은 40일만에 동생의 부활이었다. 이제는 잊었다고 믿고 싶다.
이제는 머나먼 미국 땅, 장영희 교수가 박사과정을 밟았던 대학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을 잊고 산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책날개에 적힌 장영희의 양력을 읽다가 문득 동생이 떠올랐다. 희망은 때때로 인간에게 고문이 되기도 하지만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지막 빛이다. 덤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생을 바라보는 마음의 갈피는 복잡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다녀온다는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안녕이다. 매순간 생의 마지막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가졌던 절망과 간절함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은 그렇게 늘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불행을 던져 놓는다. 운명에 순응하며 인생이 결정되어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난 늘 운명 앞에 겸손해졌다.
유방암을 극복하고 척수암을 이겨내며 강인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장영희 선생님의 죽음은 평범하다. 다만 그녀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던 희망의 메시지를 기억할 뿐이다. 삶은 기적이며 찬란한 눈부심이고 평범한 일상의 지속이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닫는 과정일 뿐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장영희 글들은 소박하고 담백한 숭늉같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자극적이고 강렬한 기억을 남길만한 소스도 메뉴도 없다. 밋밋하고 평범한 시골 밥상같지만 포만감을 느끼며 아주 잘 먹었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그런 음식은 다시 찾게 마련이다.
그녀의 마지막 책이 되어버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김종삼의 시에서 빌려온 제목이다.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김종삼의 시세계와 닮아있는 장영희의 산문들은 정갈하고 깔끔하다. 그녀 삶의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신산스러웠다.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좋은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기에 충분했겠지만 나는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인 감정이니 탓할 사람은 없겠지만 긴 한숨과 안타까움이 깊었다.
영문학 박사 장왕록의 딸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장애를 극복하며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대학교수로 살아갈 터전이 마련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부모를 만나 태어나느냐하는 것은 복권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경쟁과 자본의 힘이 막강한 나라에서 출발선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사회적 계급이 고착화되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강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장영희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복잡해진다. 장애인의 삶과 문인으로서 삶을 함께 걸었던 그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나, 비가 되고 싶어’라는 프롤로그에서부터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는 에필로그까지 정일 화백의 그림과 어우러져 책 전체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내용도 그림도 가장 선하고 평화롭고 부드러운 것들로 가득하다. 일상에서 길어올린 깨달음과 겸손이 곳곳에 묻어있고 배려와 따스함은 덤으로 놓여있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철학 이야기도 아니고 어렵고 딱딱한 이론도 없다. 저자의 삶에서 배어나온 자잘한 일상들과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들이 녹아있어 더 애틋하고 편안하게 읽힌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일상이나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게는가. 저자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숨기지 않는다. 신체의 장애가 있어 겪는 불편함이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서 겪어야하는 아쉬움들이 일상의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과장하는 몸짓도 애써 치장하는 언사도 없다. 담담하게 느낀 그대로 편안하고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야기같다.
두 개의 독에 쥐 한 마리씩을 넣고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한 후 한족 독에만 바늘구멍을 뚫는다. 똑같은 조건 하에서, 완전히 깜깜한 독 안의 쥐는 1주일 만에 죽지만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독의 쥐는 2주일을 더 산다. 그 한 줄기 빛이 독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되고, 희망의 힘이 생명까지 연장시킨 것이다. - P. 232 ‘에필로그’중에서
이미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한 저자의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들리는 것은 삶과 죽음의 일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낸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말이다. 먼저 갈다간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 놓는다면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담담하고 평화로운 일상들,과 상식이고 합리적인 행동들, 타인을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마음들이 모여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과 내일의 희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한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해도 늘 나는 행복하다고 자위하며 내일 죽을 것처럼 살 수 있는 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살아온 것도 살아갈 것도 어쩌면 모두 기적인지 모른다.
09062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