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문제는 결국 철학적 사유로 귀결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동물은 물론 같은 인간끼리 서로 학대하고 살인한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인간 본성의 문제는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확대되며 평화와 화해인가 무력과 전쟁의 논리인가는 결국 선택의 문제가 된다. 사람들의 생각은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고 쉽게 타협하지 않으며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인간의 행동 패턴과 사유 방법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두 가지 모두 영향을 준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인간은 왜 그런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가?

  수많은 심리학자들의 심리실험을 통해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해왔지만 악을 제거하기 위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악의 평범성은 우리 안에 내재한 시한폭탄처럼 여겨진다. 언제든 상황만 만들어지면 누구든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학대하며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전쟁은 그 모든 것들을 정당화 한다. 군인의 존재 이유가 그것이다. 군복을 입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생물체가 되는 것일까?

  전 세계의 큰 형님이 되어버린 미국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나 시비를 걸 수 있다. 맘에 들지 않는 이유는 만들면 된다. 시비는 괜히 거는 게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직결된다. 경찰국가로 나서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원하지 않는 개입과 간섭은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진다. 하긴 광우병를 취재한 <PD 수첩>의 기자에게 반미 종북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대한민국의 검사의 뇌구조도 궁금하다.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아랍계 미국인 마비쉬 룩사나 칸이 쓴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는 미국의 이면을 폭로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사실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새로움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들의 추악한 본질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북한의 인권을 말한다. 어느 사회나 모순이 있기 마련이고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일반론에는 동의하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랍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행태는 9.11 테러에 대한 복수에 다름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쏟아지는 횡포는 견디기 어렵다. 힘 있는 소수와 힘없는 다수의 싸움만큼 처절한 것도 없다. 미국과 아랍인 전부와의 싸움으로 비쳐지기도 하는 관타나모 이야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끔찍한 야만의 기록으로 남겨질 것이다. 신성한 미국 영토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지 모르겠다. 테러리스트 처벌을 위한 명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해도 되는 것인가.

  이 책은 마이애미대학 로스쿨에 재학 중인 여성이 쓴 일기다.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낀 모든 것들을 열심히 기록한 이야기들은 바로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불행으로부터 비껴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책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 줄지도 모른다. 상황은 다르지만 억울한 탄압이나 폭력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노조, 철거민, 외국인 노동자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그렇지 않다. 그녀의 이야기는 바로 이 시대의 증언이며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치는 비명이다.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시대의 기록이며 미국의 본질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돋보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관타나모에서 만난 사람들은 평범한 아랍인이 많다. 실제 테러를 저지르고 많은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사람도 있겠지만 상금에 눈이 멀고 물건처럼 팔려온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재판 한 번 받아 보는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몇 년씩 갇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상황은 끔찍하다.

  독재정권 시절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살았던 우리에게 이 책은 아픈 상처를 기억나게 할지도 모른다. 권력 유지 수단으로 국민들에게 가했던 폭력과 고문과 공포가 되살아나는  듯한 현실에 분노하며 이 책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관타나모에는 그나마 무료 변론을 위해 찾아오는 변호사들이 있다. 더 끔찍한 상황들과 비교하면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집으로 돌아갔지만 소아과의사 무소비, 알자지라 방송국 기자 알 하즈, 염소치기 청년 하즈 등 많은 사람들에 관타나모에 왜 끌려 온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노하고 억울하고 좌절하면서 세월을 견뎌냈다. 하지만 보상은 없다. 다만 집으로 돌아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아프가니스탄계 이민 2세로 파쉬툰어를 구사할 줄 안다. 통역으로 그들을 만난 저자의 생각과 느낌은 문화적 이질감을 넘어 무한한 신뢰와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제한적인 변호업무도 맡게 되고 증거 수집을 위해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으로 단신 출장까지 다녀오는 그녀의 흔적들이 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태러와의 전쟁’을 통해 체포된 사람들을 기소도 하지 않은 채 무기한 잡아둘 수 있는 관타나모. 법학도로서 그리고 이민자의 딸로서 과감하게 뛰어든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녀가 몸소 겪은 관타나모의 실체는 어느 누가 쓴 관타나모 이야기보다 현실감 있게 읽혔다. 객관적 사실과 그녀의 특수한 문화적 토대가 결합되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신선하다. 잘 아는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았고 객관적 사실들의 나열에만 그치지도 않았다. 아주 특별한 논픽션을 읽어나가면서 중요한 글쓰기의 방법과 태도를 배울 수도 있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 적힌 예언자 모하메드의 글이 새삼스럽다.

“배고픈 이를 먹이고 아픈 이를 돌보아라.
억울하게 갇힌 이를 풀어주고 억압받는 이를 도와주어라.”



090619-0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