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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공정무역 커피 ‘안데스의 선물’을 마시기까지 과정을 생각해 본다. 남미의 커피 농장에서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에게 조금 더 보답할 수 있다는 말을 믿을 뿐이다. 커피의 진한 맛과 향을 음미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또한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자본의 횡포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 무감각하게 지내기도 어렵다. 공정무역 커피 몇 잔을 마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각하고 행동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배려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200여 년 전 노예들의 생활이나 커피 농장의 생산 방식을 알게 되면 커피라는 음료수를 마시기 어렵다. 다국적 기업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아동들의 노동력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200여 년 전 커피농장의 농장주와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 작은 기회와 임금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그것조차 막는다면 그들의 생계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엎드려 침묵하는 것은 악의 편이라는 말은 옳다.
<200년 전 악녀 일기가 발견되다>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다. 형식과 내용이 쉽고 간단하지만 내용은 무겁고 진지하다. 열 네 살 소녀 ‘마리아’의 생일에 아버지는 쟁반에 ‘꼬꼬’라는 흑인노예를 선물한다. 200여 년 전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리남의 커피농장 주인의 외동딸 마리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직 가슴이 봉긋 올라오지 않아 걱정이고 이웃집 오빠 루카스를 좋아하는 소녀의 눈에 비친 노예의 모습은 일상 속에 마주하는 ‘악의 평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마리아에게 인종차별이나 계급의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상이 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을 선택했다. 인권이나 인종차별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이나 이론서적은 감동의 깊이가 조금 다르다. 같은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더구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형식과 내용을 조금 더 신경쓰고 내용의 깊이를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케익을 핥아먹는 꼬꼬는 누구인가?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은 그대로 자신의 가치관이 된다. 사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반성하지 않은 한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마리아라는 소녀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 짧은 분량, 쉽고 단순한 문장, 일상적인 표현으로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한번쯤 조금만 시간을 내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감동과 여운은 오래간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실제로 가르치고 익혀야 하는 것들이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밖에 것들에 대해서는 매우 소홀하다. 우리가 가르치지 않는 동안 아이들은 무관심해지고 마리아처럼 어느 순간 그 방식에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아이들은 사회시간에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고 익히게 될까? 그것이 내면화되고 일상생활에서 피부색이 다르거나 장애를 가졌거나 직업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게 되는 것은 시간이 가르쳐줄까?
악녀일기라고 명명된 이 책은 어쩌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편견과 선입견들에 대한 부끄러운 반성문일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장애인, 성적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마리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여 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아주 먼 역사속의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이 책의 주제가 너무 무겁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무지는 용서될 수 없는 죄악일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불평등의 역사 속에 놓여있다. 아이들에게 그것을 깨우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인권이나 사회적 평등, 노동자의 권리, 나눔과 배려, 평화와 행복에 대해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설은 절대로 필요하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박사는 추천사를 통해 “악녀일기는 노예주의 폭력과 위선, 광기에 대한 해맑은 고백이자 어른들 마음 속 인종주의의 추악함의 천진난만한 외양”이라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체 일부를 사고 팔고,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차별하는 등 노예제와 인종주의의 온갖 변형들이 우리 옆에 있다.”고 말한다. 짤막한 소설 한 권을 통해 너무 무겁고 진지한 태도로 교훈을 주려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200년 쯤 후에 누군가 이 시대를 기록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소설을 쓴다면 어떤 악녀가 등장할까? 과연 우리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으며 그것을 알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현재의 과거의 거울이며 미래의 토대가 된다. 오래된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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