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잡는 아버지 창비청소년문학 18
현덕 지음, 원종찬 엮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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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생이나 이오덕 선생님을 진짜 선생님이라고 상찬하는 이유는 뜻과 삶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선생님들이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많지만 훌륭한 선생님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참 스승은 만들어진다. 모든 학생에게 좋은 선생님은 없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듯이. 그래서 사제지간도 결국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와 친구다. 그 다음이 선생님이 아닐까? 보고 듣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사회화 과정은 가정에서 끝난다. 2차적인 사회화가 친구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양보와 배려를 배우고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하며 세상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교무실에 놀러오는 학생들이 있고 친구처럼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지적 토대를 형성하는 기초 과정에는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고 개인과 사회를 경험하며 간접 체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다매체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소설의 의미는 예전에 전래동화와 많이 다르다. 세계 형성의 기초 역할을 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지루하고 따분한 충고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재미있는 책 한 권이 가치관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특별한 경험으로 추억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풍부한 정보와 자료가 제공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독서를 통해 형성된 세계와 상상력의 공간은 어떤 매체보다도 중요하다.

  1909년에 태어나 1950년에 작고한 월북 작가 현덕의 이야기는 특별한 맛과 즐거움을 지닌다. 1930~40년대가 주로 소설 창작의 시대적 배경이 되기 때문에 시대의 기록물로도 손색이 없다. 이번에 창비에서 발간된 소설집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현덕 소설집은 특별한 청소년문학 시리즈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의 작품들이나 외국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 책은 시원한 샘물처럼 맑고 깨끗하다.

  유아, 아동, 청소년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출판시장에서 중학생에게 적당하게 읽힐 만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현장의 목소리들이 많다. 지적 발달 수준이 다르고 배경 지식에 따라 독서 수준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적합한 책이 나오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사춘기를 전후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알맞은 책들이 많지 않다. 일명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 문학이 존재하지만 현덕의 소설처럼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막 입학한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단편소설들을 묶어 놓았다. 소설의 배경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대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친구 이야기는 지금 아이들이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하다. 소년들 사이의 우정, 가난한 농촌 현실 등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는 ‘나비를 잡는 아버지’, ‘군밤장수’, ‘고구마’, ‘월사금과 스케이트’, ‘집을 나간 소년’, ‘모자’ 등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70~80대가 되신 분들이 읽는다면 아련한 향수에 젖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의 결들이 잘 묘사되어 있고 현실감 있는 이야기들이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어 재미있다.

  지금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이 그대로 살아있어 가독성을 떨어뜨리지만 당시의 풍속이나 색다른 문체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현실감은 더해진다. 어휘 문제는 아래에 주석을 달아놓아 해결했기 때문에 의미를 몰라 책을 읽기 어렵지는 않다. 아이들의 심리와 실제 상황을 재현한 듯한 묘사가 두드러져 재미뿐만 아니라 엮은이 원종찬의 구분처럼 소년소설의 참맛이 우러난다.

  2부 남생이는 연작 소설의 형태로 이어진다. ‘경칩’과 ‘남생이’는 당대 농촌 현실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작농의 애환과 서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읽어내는 일은 마음이 심란스럽다. 21세기에도 부재지주의 형태로 남아 있는 토지 문제는 사회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토지 경작의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이웃 혹은 친구 사이의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다. 현덕 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마지막 ‘두꺼비가 먹은 돈’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어린 아이의 마음을 따라 가며 순수한 웃음을 만들어준다.

  현덕은 동화, 소년소설,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어느 한 부분도 격이 떨어지거나 수준미달의 작품이 없어 보인다. 카프(KAPF) 해체 이후 등단해서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학에 뜻을 둔 후 김유정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서로의 소설에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나 다양한 작품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일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현덕의 작품을 읽고 그의 소설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들의 현실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이 신선하고 특별한 소설들은 아이들에게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색다른 재미와 애틋함을 전해 준다.


09061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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