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 시인선 352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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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력 있고 살아 숨 쉬는 문장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태어나는 것일까. 글을 쓰는 행위는 어느 정도 노력과 훈련에 의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시인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어지간한 시인은 부단한 노력과 다듬기로 만들어지겠지만 감탄을 자아내는 시 한 편을 쓰기 어렵다. 두보와 이백처럼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근원적 언어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인식의 힘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 -니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정현종의 시 ‘섬’과 최승호의 시 ‘인식의 힘’을 보는 순간 느꼈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언어를 부려 쓰는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적절한 상상력과 창조적 표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상상력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힘을 갖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던 밤이 있었다. 무엇이든 지나친 욕망은 사람을 지치고 병들게 한다.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언어의 힘에 압도 되었던 시절을 아름답다고 말하려는 치졸한 욕망 또한 부끄럽기도 하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이 있다. 천사의 옷은 꿰맨 흔적이 없다는 뜻으로, 일부러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이 문자에 사용된다면 최고의 찬사가 된다. 오래전 백발이 되어버린 황동규나 정현종의 시를 보며 떠 오른 말이다. 오규원의 마지막 시집 <두두>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단순히 나이 탓만은 아니겠지만 나이와 무관하지도 않은 듯하다.

꽃 시간 1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 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토는 그곳이여.


  힘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써지는 득도의 경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연스런 시간의 물결이 보이지 않으면 정현종의 <광휘의 속삭임>은 밋밋하다.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평론가의 눈이 아닌 독자의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 단순하지만 긴장이 있고 편안하지만 허술하지 않다.

  광휘(光輝)는 환하고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이다. 표제작 ‘광휘의 속삭임’은 이 시집의 특징을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는 말이다. 눈부시지만 화려하지 않고 어렵고 난해하지도 않다. 주장을 내세우지도 웅변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노인의 목소리처럼 정갈하고 부드럽다.

맑은 날

날빛이 밝고 맑아
이마가 구름에 닿는다

바람결은 온몸에
무한을 살랑댄다

기쁨은 공기 중에
희망은 날빛 속에


  구름이 두어 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날이어도 좋고 그저 푸르게 푸르게 청정한 날이어도 좋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맑고 깨끗한 생각들로 가득 찰 수 있다면 말이다. 짧고 간명한 표현과 여운이 남는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 듯하다. 우리의 삶이 구차할지라도 결국 공기와 빛으로 스러질 운명이라면 맑은 날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들이 어느 한 점에 모아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정지하는 그 순간이 느껴진다. 찰나의 아름다움이 곧 영원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지금 이 모든 순간이 점묘법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이내 바쁜 듯이 그렇게 부대낀다.

바쁜 듯이

1

정말 바쁘지는 말고
바쁜 듯이.
그것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2

한가한 시간이 드디어
노다지가 될 때까지 느긋하게
느긋하게 바쁜 듯이.


  그리하여 매일 아침 ‘운명 같은 건 없다’고 외쳐본다. 저녁도 밤도 아닌 아침에 운명을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은 하루가 너무 길고 햇살이 눈부셔 오로지 우리에게 희망만을 이야기한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침 이미지를 ‘운명’에 맞춰 우리 삶의 탄생과 죽음으로 치환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저 그런 생각들과 특별하지 않은 시선들이 모여 한 편의 시를 이루었지만 ‘직관’과 만난다. 낯설고 신선하지 않은 정현종의 시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패기와 도전이 아니라 통찰과 무위다.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밋밋하지 않은 것은 언어의 긴장과 도약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여자를 잘 안다고 말하는 시인의 의뭉스러움은 여자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여성성은 자연과 닿아있고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들 삶의 원형이며 죽음의 종착역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우리는 여자를 잘 알아야 한다. 비약하자면 삶이란 여자를, 여성성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여자

나는 여자를 잘 안다.
즉 여성성이 뜻하는 걸 잘 안다.
여자는 자연이다.

우리의 자연,
잃어버렸다는 낙원의 현현을
반짝이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이전
문명 이전
나 이전
너 이전

원초
또는
앙드레 브르통과 더불어
“모음들로 넘쳐흐르는 화관(花冠).”


  한국어의 모음들이 화음을 이룬 듯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정현종의 시집은 비오는 저녁이나 햇살이 눈부신 휴일 아침에나 펼쳐들 수 있을 것 같다. 고요를 듣고 내 삶의 자취를 잠깐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어울린다. 때때로 시를 통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다.


090608-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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