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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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은 비루하다. 끝없는 욕망과 도덕의 싸움. 이드와 에고는 오늘도 전쟁중이다. 자신을 속이고 타인에게 속고 거짓 희망을 노래한다. 일요일 아침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과 어미의 마음과 한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보았다. 기억과 망각 시스템의 절묘한 조화가 없다면 인간은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려거든 현재를 돌아보아야 한다. 과거 속에 현재가 있고 현재는 미래를 말해주는 법이니.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의 거울이 되기도 하지만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같은 세대의 문화를 전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나 정치적 상황, 문화적 토대가 달라지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데 앞선 세대는 젊은 세대가 살아갈 세상의 미래를 만든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기성세대는 젊은 시대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장 우선주의, 경쟁과 효율의 제고를 우선적 가치로 내세운 한국 경제 혹은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결과는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빼앗았다. 이탈리아의 ‘1000유로 세대’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한국의 ‘백수’는 일본의 ‘다메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전 지구적 현상으로 확산되는 위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것일까?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이 한국을 찾았다. 그녀의 이력은 특이하다.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이고 ‘반反 빈곤네트워크’ 부대표이다. 일본에서 신사회 운동의 기수로 알려져 있으며 극우파 펑크록 밴드의 보컬에서 빈곤과 생존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가 되었다. 레즈비언, 자살, 대학입시 실패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좌절과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으며 머리보다 가슴과 발로 현장을 찾아가고 실천적 운동가로 활약하는 그녀의 현재다.

  ‘88만원 세대’ 일본판의 추천사를 쓴 인연으로 두 사람은 시대를 함께 고민한다. 국경을 넘어 문제를 공유하고 카린이 한국을 방문하고 취재한 결과물이 <성난 서울>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비정규직의 삶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의 현재를 살펴보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일자리가 없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빈곤과 불안은 계속되고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기성세대가 책임져야할 부분도 있고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완고하다. 기득권은 강화되고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자본과 교육은 불공평한 경쟁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집중된다. 전체 사회로 볼 때 매우 심각하며 불행한 일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서로가 경쟁에 몰입하고 승자가 되기 위한 제로섬 게임은 지속된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러한 현상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더 심각한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황이나 일본의 90년대 장기 불황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카린은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래서 카린은 “만국의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여, 공모하라!”고 외친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던 프로파간다의 패러디지만 역사는 순환하고 반복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상황이 달라졌고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조금 변했을 뿐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소유도 행복도 동일하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천국이나 유토피아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카린이나 우석훈의 비판과 고민은 불공정한 경쟁과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이대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이 우리에겐 없단 말인가.

  계급과 일치하지 않는 투표결과, 나는 비정규적이 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빈곤과 차별에 대한 왜곡된 시선 등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룬다. 우리는 그 사회에 살고 있으며 때때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여유가 없어지고 행복하지 않으며 웃음이 사라지고 비관적이고 우울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은 상황은 계속된다. ‘희망고문’에 속지 말아야한다. 기업 광고를 통해 대한민국을 믿는다고 외치는 그들은 대다수 서민들의 고통을 먹고산다.

  작은 당근과 커다란 채찍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고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냉철한 상황판단 능력과 부정적 현실에 댛나 비판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방송과 언론의 내용은 모두 옳은 것인지, 그것들의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위치에서 행동하고 반격을 시도해야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를 <성난 서울>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적절한 비유다. 공교롭게도 제목처럼 달아오르고 있는 대한민국과 ‘성난 서울’의 미래는 대통령이나 위정자들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주위를 돌아보고 타인을 배려하고 여럿이 함께 걸어갈 준비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우리들의 ‘희망’이다.


09053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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