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직 대통령의 자살. TV를 보지 않는 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에 장난질처럼 누군가의 문자로 전해졌다. 희망돼지 노무현의 파란만장한 삶과 정치 역정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스쳤다. 가난했지만 그리웠던 고향땅, 권양숙 여사와 함께 자란 봉하 마을로 돌아왔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위아래 낭떠러지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렇게 전직 대통령을 보냈다.

  주말 아침에 대한민국은 쇼크를 받았다. 9.11 테러가 미국인에게 준 충격보다 훨씬 심각한 충격이었다. 할 말은 많지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주고 그는 떠났다. 남겨진 사람들을 비웃듯 그렇게 자유를 찾아 허공에 몸을 던질 것일까? 이제 모든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우리의 삶은 어쨌든 계속될 테니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수재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판검사가 되는 것이다. 7개월만에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노무현의 인생에서 사법시험은 인생역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패밀리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법은 새로운 인생을 주었으며 종국에는 생을 마감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의 책장을 덮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을 했다.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과 애통함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노무현이라는 자연인이 느껴야 했던 불만과 고통, 압박과 자괴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누구나 유사한 심리 상태에 빠져 본 적이 있을 것이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신념이 무너진 후의 참담함이다.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아니 왜 견뎌내지 못했을까. 누구를 탓하기 앞서 인간적인 연민과 안타까움에 목이 멘다.

  대부분 사람들은 법과 무관하게 살지만 일평생 무관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법과 마주하게 된다. 반응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상처받고 좌절한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법은 그 적용에 있어 절대 평등하지 않다. 그것은 법을 지켜야 하는 국민들도 잘 알고 있고 법을 적용하는 법조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아는 사람을 찾고 청탁을 한다. 그것이 말이든 돈이든 그 무엇이든.

  희망제작소의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발간된 이 책은 시의적절하다.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의성까지 출판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법의 문제는 항상 초미의 관심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촛불 집회 당신 서울지방법원 법원장이었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배당 문제와 이메일의 내용은 제5의 사법파동이라고까지 이야기될 정도로 전체 판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불어 언론플레이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수위를 조절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태도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법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공평한 법 집행도 상상하기 어렵다. 왜 그런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책이 바로 <불멸의 신성가족>이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을 통해 널리 알려진 법조인이다. 거꾸로 이 책이 보고 싶어졌다. 스물 세 명의 인터뷰라는 질적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은 결과물인 이 책은 가장 적나라하게 대한민국의 법조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과 인터뷰 등 현재까지 진행됐던 재판이나 개인 사례들을 모아 분석해도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도 스스로 이류 법학자로 말하는 김두식의 이야기는 인터뷰이들의 내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나름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현실을 보여주며 희망을 제시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물론이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여직원, 법원 공무원, 브로커, 기자, 경찰, 마담뚜까지 법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생한 고발이며 고뇌에 찬 자기 성찰이고 대한민국 법조계에 대한 경고이고 비난이며 변명이고 자아반성이다. 생동감 넘치는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반인들이 법조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순전히 추체험에서 비롯되며 실제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다. 책의 제목이 된 ‘불멸의 신성 가족’들은 대한민국에서 ‘사법 패밀리’가 되어 살아간다. ‘우리가 남이가?’로 통용될 만한 그들의 문법과 규칙과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겠으나 저자는 그 안에서 ‘원만함’이 갖는 위험성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그 파장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실증적인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돈과 청탁, 평판을 둘러싼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살펴보고 신성가족의 제사장으로 불리는 ‘브로커’에 대해 이야기한다.

  법조인이 이겨내야 하는 여덟 가지 유혹과 그 대안이 이 책이 핵심이 될 것이다. 새로운 언어, 결혼시장, 서열경쟁과 관료제, 판사양성 시스템, ‘원만함’의 한계와 권위주의, 변호사 개업, 법조기자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조직적이고 기민하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실로 통탄할 일이지만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궁색하지만 저자는 ‘시민이 희망이다’는 한 마디로 억지로 희망을 찾는다. 내부적 시스템의 변화와 사법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법조인 출신인 저자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로 상징되는, 대통령도 끝내 이루지 못한 사법 개혁은 ‘불멸의 신성가족’에겐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래, 시민만이 희망이다. 더디고 고통스럽더라도 나를 믿고 우리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역사는 그렇게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변호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게 만드는 ‘사법 패밀리’의 힘이 가히 두렵지 않은가? 이 책은 모든 국민들이 읽어둘 필요가 있는 책이다.


09052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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