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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이 경제의 중심이 된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는 명성만으로도 최근 각광받는 폴 크루그먼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 학자는 앞으로 불황이 L자형으로 4~5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 놓았다. 그의 전망이 적중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그간 그가 보여준 냉정한 판단과 분석 그리고 정확한 미래 예측 때문이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원숭이와 펀드매니저의 수익률 분석처럼 아무리 정교한 이론으로도 예측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세계 경제의 흐름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지만 그것을 읽어내는 눈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렵다. 폴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은 그 눈을 대신 할 수 있는 좋은 안내서이다.
이 책은 현상을 표현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그 현상의 분석을 위한 책이다. 분석은 대안을 위해 필요하다.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이 지금까지 벌어졌던 위기들은 왜 벌어졌는지, 피해를 입은 나라들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지 위해서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례연구의 이론을 개발하는 것, 다시 말해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분석을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과정을 설명해야 하고 현상을 보여줘야 한다. 책을 쓰는 목적이 뚜렷하고 방법도 명확하다. 내용은 차치하고도 글쓰기의 방법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심각한 주제는 반드시 심각하게 접근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이에 걸맞은 어려운 언어로 표현해야 하며, 가벼운 말이나 쉬운 설명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롭고 생소한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들을 ‘갖고 놀’(play)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내가 ‘갖고 논다’는 표현을 쓴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경제학이든 다른 분야에서든 별난 기질이 없는 엄숙한 사람이 신선한 통찰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 P. 15
누구나(?) 한 번 쯤은 고민해 보았을 문제다. 폴 크루그먼은 어쩌면 천재가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천재는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물리학자였던 리처드 파인만처럼 저자는 어려운 경제문제를 알기 쉽게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경제의 핵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정치와 경제는 복잡해지고 예측가능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이 정치로부터 분리된 후 오히려 정치를 이끌고 있다. 항상 문제의 핵심에는 ‘경제’가 놓여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구소련의 붕괴는 단순한 정치 체제의 붕괴나 한 국가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구소련의 붕괴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승리한 자본주의가 완벽한 제도이거나 훌륭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내의 산적한 문제는 1930년의 대공황을 포함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위기, 일본의 장기 침체, 아시아의 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지면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부적절한 정책과 헤지펀드의 실체를 파헤치며 이러한 결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미국, 아니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일컫던 그린스펀을 거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근거는 경제에 관한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정확하고 타당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림자 금융, 공포의 총합에서 보여주는 비판적 관점은 지나온 과거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며 날카로운 지적이다. 돌아온 ‘불황 경제학’을 설파하는 저자가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면 미네르바처럼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최근 개성공단을 놓고 이명박과 김대중, 박지원과 정몽준이 보여주는 관점의 차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의 차이이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하고 나선 대통령의 이념과 태도는 훨씬 급진적이다. 그간의 상식과 합리를 뒤엎는 발언들과 가진자들을 위해 노동자들을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보아 넘겨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문제는 경제가 되겠지만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인만큼 불황의 경제학을 정치로 풀어내야한다는 압박은 당연하다.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자세와 태도는 중요하지 않다. 시스템의 문제이며 금융 정책과 제도의 문제이고 정책의 문제로 귀결된다. 개인은 방관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이 경제를 주도하고 개인의 경제적 활동과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게 아니라 개인은 전체 시스템의 구성원일 뿐이다.
우리가 맞고 있는 ‘불황의 경제’ 시대에는 공급이 아닌 수요중심 경제학이 전개된다. 그 분석과 대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 맞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가 던지는 한국 경제의 화두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불황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외치며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이 있지만 이명박도 오바마도 비슷한 말을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경제를 대하는 방식도 해법도 각기 다를 것이다.
손 놓고 앉아 기다릴 수만은 없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같지도 않은 말을 주워섬길 수도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문제는 경제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누구의 의견이든 상관없지만 우리의 방향과 태도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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