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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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경 수십 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아주 먼 과거의 삶은 어떠했을까? 답답해서 견디지 못했을까? 넓고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사람들은 항상 기회비용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을 후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기와 결단력이 없어서 현재의 삶을 이어간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항상 변화를 모색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인생이 모두의 꿈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래 혹은 희망의 이름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기다린다. 그 불안함,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안정을 추구하며 예측 가능한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인류에게 유목적 삶은 시원의 바다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누구나 훌쩍 떠나고 싶어한다. 바다를 동경하고 고래를 꿈꾸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생명의 근원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전혜린의 말처럼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이 숨어 있는 우리들 가슴 속에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떠나고 싶었다.

  전성태의 소설집 <늑대>는 몽골을 배경으로 한 연작들이 주를 이룬다. 낯설고 생경한 풍경, 신산스런 삶의 형태를 통해 우리들의 그것을 돌아보게 한다. 이국의 풍경이 동경과 호기심으로 그려지거나 이질적인 차이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잡 미묘하다. 그들의 나라 몽골은 어떤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인가 살펴보자.

  단편 ‘목란식당’은 북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곳은 남과 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음식점의 풍경을 통해 작가는 체제의 허구를 드러낸다. 이념의 대립으로 분단은 고착화되어 있고 현실 공간에서 남과 북은 달나라만큼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 3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그 실체를 확인한다. 이념의 대립을 다룬 소설도 아니고 몽골의 풍속을 위한 소설도 아니지만 그 모두를 절묘하게 담고 있기도 하다.

  표제작 ‘늑대’는 몽골 초원을 배경으로 인간의 탐욕과 원시성의 만남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우리들은 삶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그 경계 너머를 동경하기도 한다. 단편 ‘늑대’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넘어선 자리에 서 있다. 인간의 탐욕과 문명은 자연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못한 채 파괴와 죽음을 부른다. 의외의 결말이 신선하기보다는 의도된 소설의 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남방식물’과 ‘코리언 쏠저’는 몽골로 이식된 한국인의 삶을 보여준다. 토착민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것이 뿌리 뽑힌 삶이든 잠시 머물기 위한 임시 방편이든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몽골에서 잘 자라는 고구마처럼, 시적 감수성을 되찾기 위해서 머물렀지만 결국 코리안 쏠저가 되어야 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삶은 때때로 불가해한 질문들을 던진다. 예기지 않은 상황과 부딪치고 원하지 않는 길로 접어들고…….

  ‘중국산 폭죽’은 몽골의 아이들을 통해 사회주의적 삶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이념과 정치체제의 비판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몽골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로 읽었다. 뉴스나 외신을 통해 접하는 낯선 소식이 아니라 우리들의 과거와 겹쳐지는 장면들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상황이 몽골 아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한다. 기본적 삶의 조건을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이 한반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어렵다.

  모두 열편의 단편 중 여섯 편이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일곱 편이 ‘지금-여기’를 넘어선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삼고 있다. 경계를 넘는 일은 불안과 공포일 수도 있고 희망과 설렘일 수도 있다. 작가가 무대로 삼은 몽골은 대자연을 무대로 과거의 영광과 상처가 남아있지만 근대적 삶의 조건들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불안한 모습으로 흔들린다. 우리는 낯선 세계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 내 구도 못 봤소?’는 작가의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가장 토착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을 통해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이 쏟아내는 구수한 사투리의 향연은 우리말을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를 감탄하게 한다.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는 기억 저편의 과거를 보여준다. 시대극을 보여주듯 저자의 유년 시절 한 토막을 구경하는 듯하고 에피소드를 통해 당대 현실을 기막히게 재현하는 듯하다. ‘이미테이션’을 통해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과 삶의 조건을 점검하기도 하는 작가의 관심은 한 곳에 모아지지 않는다.

  이 소설집은 한 호흡으로 읽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한 시대를, 한 세대를 아우르는 것도 아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 현실을 적확하게 그려내며 삶의 조건을 확인하고 현재의 상황을 점검한다.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낯선 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초월적 공간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읽어 볼만한 소설이다.


09051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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