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전쟁 잔혹사 -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특이하고 재미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우울하고 슬픈 책이 있다. 전자의 경우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막막한 불안과 슬픈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강준만의 <입시전쟁 잔혹사>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어떤 대안도 현재로서는 부정적 견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 관한 수백만가지 가설이나 이론이나 대안들이 제시된다고 해도 사실 공허하기만 하다. 완고한 현실이 뒤바뀌지 않는 한 그것은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리들 삶의 역사에서 찾아진다. 저자는 입시전쟁의 기원을 조선시대 과거제에서부터 고찰하고 있다. ‘출세’라는 개념의 탄생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공부’에 목숨 걸었고 ‘학벌’에 올인해 왔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반상제도는 역전 현상을 보이고 양반의 숫자는 급격히 증가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 상승을 시도한다. 족보를 사든, 시험에 합격하든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들 머릿속에 뿌리 깊게 각인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면서 더욱 강고해진 출세에 목숨 걸기는 생존경쟁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해방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고 경성제국대학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는 콘크리트처럼 굳건해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피라미드 구조는 나라 전체를 경쟁 시스템 안에 귀속시켰다.

  이승만의 집권과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학벌주의는 21세기에도 계속된다. 60년대의 경기고-서울대(KS) 파워는 70년대 들어 고교 평준화를 통해 완화되는 듯 했으나 80년대 과외 금지 조치 이후에도 8학군의 부상과 더불어 열병처럼 식지 않는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 들어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서울대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광신적 사교 집단’ 대한민국은 여전이 학연주의라는 입시전쟁의 동력을 가지고 있다. 이해찬 세대를 거쳤지만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학벌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고 노래방 도우미의 36.8%가 가정주부인 나라에 살고 있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3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와 같은 엽기적인 급훈이 고3 교실에 걸리는 세태는 대한민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학원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이민 혹은 고시합격이다. 의학전문대학원과 로스쿨은 서민들에게 꿈꿀 수 없는 재력을 요구한다. 부의 재분배는 입밖에 꺼내기 힘든 좌파적 상상력이 되었고 억울하면 출세해야하는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 교육은 미친 교육이지만 브레이크가 없다. 저자는 SKY의 소수정예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 책을 마감하고 있지만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자궁가족으로 똘똘 뭉친 이기주의와 미래 사회에 대한 합의와 대안 없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그간의 상황과 원인들을 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읽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깊어진다는 증상을 피할 수 없는 책이다.

090427-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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