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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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은 읽으면서 감정이 기복이 심해진다. 한 사람이 저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는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 때로는 파안대소하며 하늘을 보며 웃는다. 잔잔한 미소와 쓴 웃음이 교차하기도 하고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기도 한다. 한 인간에게 한 권의 책이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영혼의 참된 스승은 종교가 아니라 책이라고 믿는다면 많은 종교인들에게 몰매를 맞을까?

  평생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확인할 수도 있는 한 권의 책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앎의 세계는 끝이 없고 인식의 힘을 기르는 일은 내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어렵고 난해한 철학책 한 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할 수도 있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하루에 수십 권씩 읽어낼 수도 있다. 문제는 내 영혼의 깨달음이다. 그 도구가 책이든 아니든 말이다. 가장 손쉽게 값싸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는 여전히 책이 담당하고 있다.

  지승호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다. 지금까지 지승호가 보여준 혹은 만난 사람들과 엮어낸 책들은 그것을 간단하게 증명한다. 전문 인터뷰어로서 한 우물을 파는 일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 많은 어려움과 고통들을 즐길 줄 아는 인터뷰어가 지승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읽어온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앞서 말한 책이 주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만을 믿고 책을 사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승호는 내게 그런 인터뷰어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또한 기대에 부합하는 책이다. 인터뷰이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곤란한 질문도 하기 싫은 말도 해야 한다. 혼자서 잘 알거나 하고 싶은 말만 써 놓은 것을 읽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색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독자의 입장을 대신하는 인터뷰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인터뷰이에 대해 샅샅이 훑어낼 수 있는 지독한 근성과 철저한 준비가 돋보인다.

하여간 당신한테 잡히면 끝장을 봐야 돼. 이제 정말 끝난거야?(웃음) - P. 338

  인터뷰이 김수행의 마지막 말이다. 난 이 말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까 싶다. 믿을만한 인터뷰어 지승호가 김수행으로부터 끌어낸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경제’ 이야기다. 1987년 ‘서울의 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 김수행의 서울대 교수 임용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가 이제 정년 퇴임을 했고 그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전공 교수는 아직 임용되지 않고 있고 임용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주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들만의 리그는 여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언제나 비주류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어야 세상은 조금씩 따뜻해진다고 믿는 나는 지승호의 인터뷰가 가슴 아팠다. 2009년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도 그가 던지는 질문의 깊이도 김수행의 대답도 모두 현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도전과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희망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정책도 대안도 부재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고 그의 이론들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진 것인가부터 논란의 초점이 된다. 용도 폐기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붕괴했고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용인함으로써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지구를 뒤덮었고 불평등한 게임인 시장의 논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알려야 하고 알고 있다면 연대와 행동으로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 책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 고민의 단초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은 21세기 한국 경제를 위한 대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올 수 있다. 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넘어서는 상상력은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 분명한 문제들이 노출되고 민중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는데 손 놓고 앉아 마냥 하늘만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점진적 혁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 세계적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허리띠만 졸라매면 되는 게 아니다. 대졸 초임 임금을 깎아 고용을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고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어쩌면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과 살아갈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거역할 수 없는 고정된 실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우석훈과 김수행이 함께 나눈 대화들은 참담한 현실에 대한 확인이며 미래의 희망을 촛불에 담아내려는 뒷담화에 불과하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알고 행동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언제나 지식의 종착역은 행동이므로.

  민중들의 외침을 외면한 어떤 정권도 살아남지 못했으며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걸음씩 이 사회를 이끌고 나아왔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이 땅의 참 주인인 민중들의 힘이었다. 노동자, 농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땀흘려 이루어낸 작은 결실들이 자본의 논리로 어처구니없는 힘의 논리로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도록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아버지가 노동자, 농민이었고 우리들이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긴 인터뷰를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090308-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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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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