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 살림지식총서 344
김용신 지음 / 살림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래디컬radical이라는 말을 좋아하다는 강유원의 말을 좋아한다.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과감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을 용기라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고 사람과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래디컬과 거리가 멀다. 신념이나 가치관도 한 사회의 결과물이고 보면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올곧은 정신은 높고 푸르다.

  우리 사회는 참혹한 근대사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유효하며 정치는 여전히 민감한 주제다. 일상생활에서 친구나 동료지간에도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고 선호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제각각이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정당의 정강이나 정책, 정치인의 품성과 정치적 성과보다 감정에 우선하고 보수와 진보라는 자신의 성향과 일치한다.

  당연하게도 보수적 정당이나 진보적 정당이나 선명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유권자의 눈치만 보거나 유권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나라당이라는 수구보수 정당과 그보다는 조금 더 개혁적이라고 스스로 외치는 민주당과 현실의 적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진보적인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있다.

  최근에 들어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 오래된 이념 논쟁이지만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권 교체 이후 현실 정치와 사회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권력과 정권 유지 수단으로 내세운 경제는 파탄 지경이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서민들은 더욱 힘겨운 생활이 보장되었다. 앞날은 보이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는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과 사람들의 이념에 대해 점검을 시도하는 책이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극도로 언급을 회피하고 있으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 한번쯤은 반드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꼼꼼히 짚어나가고 있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사람들의 의식에 내재한 정치적 성향들은 나이와 계층과 성별과 학력과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단순히 교육에 의한 것이거나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환경과 인식의 전환점에 따라 보수와 진보는 결정되기도 한다. 모든 외적 조건이 진보적일 것 같은 사람도 보수적인 부분이 있고 대단히 보수적인 사람도 진보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지니는 이념적 성향은 개인의 이익과 결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사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리사욕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은 보수와 진보의 의미와 정신분석적 의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특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퇴행적 정치 행태를 보이며 단 한 번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적이 없는 정치인들 보며 정치에 대한 철저한 냉소와 혐오감만 늘어가는 일은 슬픈 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살펴 보수와 진보의 병리 현상의 원인을 파헤치고 있다. 이념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는 건전한 갈등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목숨을 걸고 죽거나 죽이거나! 최소한의 신의나 배려가 없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곳이 바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그 원인을 아는 것도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의 숙명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의미도 결국에는 보수와 진보 너머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을 게다.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화합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해가며 이 책을 끝내는 저자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당분간 어떤 대안도 한국의 정치 현실을 의회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무의식에 내재한 한국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진보와 보수의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퇴행적 민주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을 바라보면 한숨만 절로 나온다. 법무부 장관이 국회의원을 조폭 다루듯이 하겠다고 공언하고 공권력은 서민들을 태워죽이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보수 신문재벌에게 방송을 내주고 국민들을 길들이기 위한 작업은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적 통합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념을 떠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다 보면 우리에게도 ‘똘레랑스’가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지 말고 서로의 주장을 단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줄 준비만 되어 있다고 하면 겁 없이 날뛰는 정부도 없었을 것이고 국민을 볼모로 내세우는 정당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래디컬하지만 표현 양상이나 현실에 대한 대응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낯선 시간과 생경한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현실 속의 유리벽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혁명이든 개혁이든 어떤 이념과 규정으로도 견고한 현실의 벽을 허물기가 너무 벅찰 때가 있다. 힘겨운 싸움이지만 평생 지속되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그러하겠지만 모든 보수여, 이대로! 모든 진보여, 혁명의 그날까지!


090304-0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