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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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이라는 연령과 대상은 모호하기만 하다. 학령으로 보통 중학생부터 대학생 정도를 이르는 말이고 연령으로는 13세에서 23세 정도까지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미성숙한 성인이지만 어린이와 구별된다. 2차 성징을 통해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 계급 체계 안에서 기성세대들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아직 미완의 상태이기 때문에 성인들의 요구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청소년은 세대를 뛰어넘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선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래서 항상 진보적이고 머물러 있기보다 변화 가능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항상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울한 표정, 희망 없이 처진 어깨, 매일 반복되는 공부 기계로 명명되는 이들의 일상성을 깨뜨릴 만한 용기와 토대는 마련되어 있는가.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우정과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을까? 방황과 고뇌가 청소년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실존적인 것이 아니라 진학과 취업에 국한된 것이라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그런 현실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우리는 얼마나 불쌍한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동문학과 성인문학으로 양분되어 있다. 청소년 문학이 따로 영역 구분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러했다는 뜻이다. 통상적으로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이나 황순원의 <소나기> 정도가 청소년들에게 사랑 받았다. 청소년들의 사회적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영혼과 육체의 성숙에 따른 문제들을 다룬 본격 청소년 소설이 없다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대로 육체적으로만 성숙한 미숙아로 바라 본 것은 아닌지.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나 학생이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구속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강제로 머리를 자르게 하거나 치마 길이가 1cm 짧다고 모욕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숫자로 매겨진 성적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못하는 한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

  대학 이름 대신 추첨으로 번호를 붙여 대학 이름을 결정한 것은 68혁명 당시 고등학생들의 참여와 행동으로 얻어낸 것이다. ‘88만원’세대로 명명된 20대는 이제 경제 불황의 책임을 임금 삭감으로 감내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합리와 이성보다 권력과 헤게모니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그들은 언론관계법을 통해, 교육 개혁이라는 교묘한 경쟁 구도를 통해 그것을 공고하게 유지하려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현실은 각박해 질 것이며 살아남은 자는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경쟁을 위한 경쟁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나는 죽지 않겠다>는 공선옥의 소설집은 청소년이 주인공이거나 청소년이 화자인 소설들이다. 이 소설집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나 사건들이 청소년‘만’을 위해서 쓰여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구분이나 창작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저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발간된 이 책은 기성 작가의 본격 청소년 문학이라는 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전문 청소년 작가로 등단하거나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성 작가들의 작품들 중 그 대상이 청소년인 경우와 아동 작가들이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경우가 나의 예상 작가층이다. ‘문학동네’나 여타 출판사들도 ‘돈’이 되는지 ‘사명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청소년 출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꼭 필요한 책과 내용들은 무궁무진하다. 이 관심과 열정을 부디 지속적으로 이어가시길 당부 드린다.

  이 소설집에는 6편의 소설이 묶였다. 마지막 보리밭의 여유는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본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념이나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가 어떤 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지 잘 보여준 소설이다. 중학생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제작 ‘나는 죽지 않겠다’는 학교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은 선택이 아니다. 마치 복권처럼 부모를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난 생득적 환경 때문에 차별받거나 상처를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아주 많다.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감이 조금 미흡하기도 하지만 관심의 대상이나 주제가 많은 함의를 지닌다.

  ‘일가’의 배경은 농촌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은 모두 도시에 거주하지 않으며 전부 학교에 다니지는 않는다. 보다 다양한 계층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삶의 다양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두가 한 줄 서기에 바쁘고 붕어빵처럼 똑같은 꿈을 꾸며 원하는 게 모두 돈일 수는 없지 않은가.

  ‘라면은 맛있다’와 ‘힘센 봉숭아’는 연작처럼 읽힌다. 알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볍고 재치있는 문장들로 청소년들의 입맛과 눈높이를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소설들도 기대된다. ‘울 엄마 딸’은 한부모 가정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인식해 가는 딸의 목소리를 통해 결국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소설이다.

완전한 삶은 없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이 인생일 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모두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청소년들이 겪는 꿈과 희망, 고민과 방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해 보려는 시도와 노력은 문학을 통해서 먼저 시작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청소년 문학의 등장을 알리는 소설집으로 공선옥의 작품집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09022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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