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엮음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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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은 글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드러내는 최소 단위를 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국어 문법에서는 형태소를 최소 유의미 단위로 보지만 우리는 통상적으로 문장을 하나의 의미 단위로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하나의 완결된 생각이나 맥락을 의미한다. 문장이 모여 문단을 이루고 문단이 모여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된다. 문장은 그 자체로 생각의 단위를 전달하고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문장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생각과 그 다음 이어질 내용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고 자세하게 설명되기도 한다. 반복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상상력과 도약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하나의 완결된 문장을 쓰는 일만큼 어렵다. 이런 탄탄한 구조와 전체적인 맥락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때 그 글은 읽을 만하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글을 영혼을 불어넣고 구조와 연결 관계는 믿음을 준다. 그것이 소설이든 아니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누리집 ‘문장’에서 문학 집배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 현재는 나희덕이 시를 배달하고 김연수가 문장을 배달하고 있다. 도종환과 안도현이 이미 배달했던 시를 모아 시선집을 냈고 이번엔 성석제가 <맛있는 문장들>이라는 제목으로 배달된 문장들을 묶어냈다. 문학 집배원 성석제가 찾은 문장들은 진짜 맛있다.

  문장을 맛으로 표현했을 때는 그만큼 감각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말이다. 문학 집배원 서비스는 이메일로 플래시와 함께 시를 낭송해주기도 하고 문장을 상황에 맞게 연출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방편으로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고육지책으로 보여 서글프게 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 책이 필요 없는 사람들은 없다. 다만 좋은 문장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로 보면 그 뿐일 수도 있겠다.

  현역 작가가 골라낸 문장들은 소설의 일부를 발췌하는 형식이다. 단편 혹은 장편 중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나 문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일종의 꽁트 모임집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앞뒤 상황을 전혀 모르는 토막글도 있고 완결된 한 편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맥락이 궁금하기도 하다. 독자들은 출전을 찾아 읽어야겠고 그러다 보면 책을 읽는 습관도 길러지고 재밌는 문장으로 인해 소설의 특별한 맛을 먼저 체험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많은 책들을 읽히기 위한 방편이라면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소설가가 안내하는 대로 맛깔나는 문장들만 모아 놓은 책을 통해 본래 작품의 의도와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에 대한 한 소설가의 책갈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문학의 정수라고 볼 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많이 읽힌, 또 재미있는 소설들 속에서 골라낸 문장들이기 때문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익숙한 소설가들의 화려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어 차례를 보면 우리 문학사의 면면을 돌아보고 간혹 고전과 외국 작가의 글들도 만날 수 있다.

  문장이란 무릇 그 사람의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한다. 한 개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문장이다. 글은 그 사람의 영혼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진실하지 못한 문장은 읽기도 전에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깊이와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문장들은 읽는 사람에게 글 읽는 즐거움을 전해주고 책이 주는 기쁨을 배가시킨다.

  성석제는 자신이 읽었던 재미난 책의 일부분을 부담 없이 전해주는 것만으로 우리 소설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될 만한 문장들을 골라냈다. 특별한 기준이나 엄격한 규칙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유쾌한 문장, 깔끔한 문장, 정제된 내용들을 한 눈에 읽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화장실에서 혹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여행길에, 잠시 머리를 식히는 동안 이 책을 펼쳐 들고 몇 장 넘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처럼, 몇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나 편안함을 전해줄 수 있는 문장들이 우리 주변에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문학이라고 하는 공통분모 안에서 펼쳐지는 언어들의 향연은 그저 즐겁기만 하다.

  가볍고 쉽게 접근하고 싶은, 상대의 독서이력과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선물로도 적당해 보인다. 그저 책 자체에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이 책은 그 앞줄에 세워둬도 무방하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문장들 뒤에 붙은 성석제의 간단한 메모와 해설은 사족에 불과하다. 그것은 독자 스스로가 정리할 수 있는 느낌이나 감상이어야 한다. 책을 읽어 줄 수는 있지만 대신 느껴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리로 그 책을 이해하려 하는 요즘 아이들의 방식이 문학을 점점 멀어지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가슴을 열고 문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TV 드라마처럼 말이다.

  봄이 올 것이고 하늘은 맑아지겠다. 따스한 햇살과 향기로운 꽃처럼 때가 되면 알아서 우리를 찾아주는 자연과 달리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엮은이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보석 같은 문장들이 모여 빛을 발한다. 짧다는 아쉬움이 감질나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새로운 재미를 문장 안에서 찾고 싶다면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수 있는 책이다.


09022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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