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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터넷을 논하다 - 포털.이용환경 그리고 규제
권헌영 외 지음 / 서울경제경영 / 2008년 12월
평점 :
최근 10여 년 동안 가장 급격한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인터넷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인터넷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IT 강국을 표방하며 정보화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주도하에 발전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선 것이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이다. 모뎀을 이용해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을 사용하던 통신족들이 네티즌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고 9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용자들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자본이 결합되면서 벤처산업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의 배를 띄웠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포털로 대표되는 우리의 인터넷 사용 환경은 검색, 뉴스, 쇼핑이 한 번에 해결되는 구조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서비스가 한 곳에 모여 다양한 서비스로 확산되는 구조다. 원스톱 사용 환경을 표방하는 포털의 영향력은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포털에서는 그 외에도 커뮤니티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이용자들은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탄생에서 성장, 정착 과정이 워낙 다이나믹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변화 속도와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 내일의 인터넷을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어렵다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그 변화 가능성을 내다보거나 중요한 흐름을 짚고 싶을 때 쉬운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조금은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터넷을 論하다>는 ‘인터넷 정책 연구그룹(인정연)’에서 펴낸 책이다. 법학을 전공한 권헌영, 홍승희, 황성기 교수와 사회학을 전공한 배영 교수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쓴 책이 아니라 연구 그룹의 결과물을 묶어냈다. ‘포털, 이용환경 그리고 규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 실명제 문제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법적, 제도적 측면과 사회적 현상들을 두루 살펴보고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에 대한 궁금증과 원인과 대책들에 대해서도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먼저 배영은 ‘인터넷과 한국사회’를 인터넷 포털서비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의 진화와 포털의 진화는 그 맥을 함께 했다. 이제 문제는 콘텐츠다. 상생의 공간이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볼 부분이다. 권헌영은 ‘한국의 인터넷 규제 어떻게 전개되어 왔나?’라는 주제로 법률적 측면에서 인터넷 규제가 어떤 흐름과 전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황성기는 ‘한국에서의 인터넷 규제’라는 주제로 포털 규제를 통해서 본 한국 인터넷 규제의 현재를 조망한다. 봉건제형 인터넷 규제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고 있지만 답은 우회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인터넷은 어디로 갈 것인가? 홍승희는 ‘인터넷, 그 새로운 환경과 범죄의 온상?’이라는 주제로 클린 환경을 위한 처벌주의를 다시 고찰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네 명의 지상 토론을 정리하고 있다.
보다 다양한 관점과 주제로 논의가 풍부하게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많은 사람들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포퓰리즘에 휘말릴 수는 없다. 소위 ‘최진실 법’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펴보았는지 그 부작용과 감정적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독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규제할 수 없고 규제해서는 안 되는 공간과 매체의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물론 포털 사업자나 일반 이용자들까지도 관점이 다르다. 이용목적이 다르고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터넷이 어떤 공간이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발전적 전망과 규제의 범위와 대상 혹은 규제 자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이용자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이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인터넷은 산업적 측면이나 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 이어 정치 공간으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2002년을 기점으로 현실로 드러난 웹 2.0 시대의 한국 정치는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인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새로운 공동체의 도구가 될 것인가. 자율적인 규제와 자정작용만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법과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서 규제 장치들을 늘려가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모두 동의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인터넷은 특수성과 다른 나라와 다른 맥락 속에서 발전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안들도 제시될 수 있다. 모두 함께 꿈꿀 수 있는 재밌는 놀이터에 울타리를 칠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함께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정보제공자와 매개자의 애매한 갈림길에 서 있는 포털들의 정체성에 대한 관점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네이버로 대표되는 두 포털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들이 절실하다. 정책이나 규제보다 한 발 앞선 변화는 오히려 그것들을 무력하게 할 수도 있다. 포털과 이용자는 그렇게 더 즐겁게 놀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던 넷스케이프 2.0의 아이콘은 등대였다. 검은 밤하늘을 비춰주던 희망의 불빛처럼 인터넷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한 희망과 꿈을 현실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꿈이 현실이 되고 다시 현실을 통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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