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소원칙
도정일 외 지음 / 룩스문디(Lux Mundi)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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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화 사회라고 명명되는 네트워크 시대로 접어들면서 글쓰기가 일반화 되었다. 나같은 사람도 목적 없이 끄적이고 있을 정도로 글쓰기는 이제 보편화되었다. 지식인의 전유물도 아니고 특수한 계층만이 지닌 특권도 아니다. 이제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는다. 불과 100여년 만에 천지가 개벽하듯이 근대화의 물결 이후 지식은 보편화되었다. 책을 통해 지식인과 기득권 계층의 비밀이 공개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사회는 개방되었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열린사회’를 이야기했지만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하고 점진적인 변혁이 가능한 진정한 열린사회는 아직도 요원하다. 읽기와 쓰기는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가장 첨단의 도구이다. 컴퓨터와 IT 기술이 아니라 가장 고전적인 방식인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만 열린사회는 가능하다고 본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은 이미 현실을 장악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블로그의 확산과 1인 미디어 시대는 미래 사회를 예측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는 가능성. 더 이상 고 읽었다면 생각하고 쓰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 블로그의 확산과 더불어 글쓰기의 욕망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현상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것을 대학 입시에서는 ‘논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행 대한민국의 입시 논술은 글쓰기 능력에 대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출제와 정답이 있는 논술이 글쓰기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주관식 평가에 다른 이름이다. 모범답안과 점수로 환산되는 글쓰기가 가능한가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문제에서부터 논술은 접근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자체적인 시행착오와 시행상의 어려움들이 문제시되면서 통합논술이라는 괴물도 주춤하고 있다. 강수돌의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를 통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볼 수 있다. 글쓰기를 배울 수 없는 핑계를 대자면 대입제도 때문이며 대입 제도는 학벌과 헤게모니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버했나?

  <글쓰기의 최소 원칙>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책이다. 일단 여러 명이 공저한 책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목적과 의미가 분명하지만 필자들의 논의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확보할 수도 있지만 잡탕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절반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2007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특별강좌로 마련되었다면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글쓰기를 욕망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귀중한 이야기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몇 사람이 산보를 나간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청중과 질문자를 외면하는 내용에 또 다시 울컥.

  도정일의 이야기를 김수이가 이끌어내는 첫 번째 이야기 ‘무엇을 쓸 것인가’와 김훈의 ‘문학적 글쓰기는 하나의 전략이다’, 배병삼의 ‘고전, 현재형으로 끊임없이 다시 써야 할 ‘오래된 미래’’, 김영하의 ‘존재․삶․글쓰기’가 읽을만하다. 표지에는 열네명이나 적혀있지만 전공분야의 이야기나 글쓰기와 아주 먼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런 식의 이야기라면 도대체 글쓰기와 무관한 이야기가 어딨나?

  제목은 구미가 당기지만 책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 대담자나 강사로 나온 분들의 면면이나 내용이 읽을 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글쓰기의 최소 원칙은 몇 가지 얻지 못한다. 이름난 분들의 경우 이 책 저 책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로 개인적으로 지루한 면이 많았다.

  특별하고 새로운 방법이야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문제점을 파악해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글쓰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말에는 백번 공감한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과 기본적인 원칙들에 대한 고민들로 채워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핸드폰 문자, 이메일, 댓글에서부터 보고서, 기획안, 논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일 읽고 쓰며 살아간다. 무엇을 쓸 것인가와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글쓰기의 시작이다. 정확하고 바른 문장부터 시작해서 읽을 만한 글이 되기 위한 과정들은 누구나 알고 싶어 한다. 글쓰기에 관한 무수한 책들이 나왔고 나올 것이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 단 한 줄의 영감이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글쓰기는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대원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책읽기든 글쓰기든 문학적인 글이든 실용적인 글이든 스스로 즐기지 못한다면 건강에 해롭다. 의무감에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자유롭고 행복한 일로 만드는 일이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 아닐까?


09020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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