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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4
김경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평점 :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언어의 감옥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유의 도구가 언어이며 삶의 방편도 언어이다. 말과 글이 없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지 않는다. 언어의 힘은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따라서 언어의 세계는 인간의 한계이며 숙명이다.
태초에 말은 생존을 위한 의사소통의 도구였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보다 나은 수렵과 농경을 위해 힘없는 존재였던 원숭이들은 손과 언어의 힘을 빌렸을 것이다. 말로 전수된 기술과 생활의 지혜는 지식으로 축적되고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록을 시도하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벌어졌을 것이다.
가만히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의 삶은 결국 언어가 가져다 준 선물임을 알게 된다. 고급한 문화를 향유하고 문명을 이루어 살게 된 인간의 언어는 그칠 줄 모르는 실험과 도전과 모험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그 첨병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삶의 기록으로 혹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기능한 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정밀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극단을 보여준다. 시인들이 짊어진 천형의 고통은 또 다른 희열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는 그 고통의 결과물이다. 한 편 한 편 쏟아낸 실험의 결과물들, 감정의 편린들, 이성적 사유들을 우리는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만나게 된다.
김경주의 <기담>은 오랜만에 언어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시집이었다. 전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서 보여주었던 가능성은 이미 시인의 재기발랄함을 넘어서 버렸다. 극한 언어적 실험극은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며 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다. 언어의 진경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시(詩)와 극(劇)을 결합하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이 책은 시집의 통념을 깨고 있다.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시의 거센 물결이 밀려오던 시절이 떠올랐다. 모진 세월을 견뎌야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시의 시대라 불릴 만큼 서정시로 도피했던 사람들에게 실험적 시도들은 낯선 경험이었고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그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희곡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무대 위에 올릴 수 없는 추상과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파괴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드러난 현실은 독자들이 감당하게 버겁다. 무엇보다도 실제 사진이나 시집 표지를 패러디한 시도 등 책 속에 또 다른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은 언어의 양면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읽혔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이 시집 읽기는 황망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게 했다. 어차피 시가 아니 문학이 허구의 세계라면 시인은 그 극단을 만져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언어들은 낯설고 기묘하다. 하나의 이미지로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구체적인 상황과 서사구조를 읽어낼 수도 없다. 뒤틀리고 이질적인 것들은 현실을 뛰어넘고 존재의 저편으로 멀리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언어는 더 이상 의미를 드러내지 않을 지도 모른다. 때 묻고 익숙해진 습관들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사물에 불과하다. 새롭고 신선한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켜켜이 먼지 묻은 세월의 더께만 어깨를 짓누른다. 말과 사물은 제각기 갈길을 떠난 지 오래고 사람들은 소통할 수 없는 언어만을 더럽힌다.
투명한 유리벽 안에 놓여 있는 개별자들과 통합할 수 없는 존재들의 마주침은 우연이거나 혹은 숙명이거나. 이기적 욕망들과 한없는 외로움의 만남은 세상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으로 만들어버린다. 언어는 갈 길을 잃고 헤매다 서로의 입술을 만지작거린다.
시인은 언어들이 만들어 낸 극(劇) 속에서 길을 찾았을까? 당연하게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없는 길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어차피 낯설거나 익숙한 곳이므로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시인 혹은 독자의 몫이므로…….
기담(奇談)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어 들어가서야
다시 흘릴 수 있는 피가 있다
090109-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