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낙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는 교과서에 실린 시가 되어 버리기 한참 전에 이 시를 접하고 한동안 같은 구절을 수없이 반복해서 암송했다. 스무 살 무렵이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철학적 고민이 시작되던 무렵으로 기억된다. 만남과 이별은 일상다반사이며 삶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이별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의 원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리의 원리이면서 삶의 자명한 이치이기도 하다. 생성과 소멸은 자연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계없이 적용되는 이치이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오만한 인간도 시간 앞에서는 겸허해진다. 말할 수 없는 생의 허무를 느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의 단위 자체가 하나의 경계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시간은 아니 모든 순간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순환구조가 우주와 시간의 원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시작을 정해놓고 끝을 말한다. 하루, 한달, 일년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단위를 통해 무언가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은 이제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모든 시간이 처음이며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처음은 무언가의 마지막이었으며 그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그렇게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앞에 인간은 또 다시 보잘 것 없는 작은 존재임을 확인 할 뿐이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다. 노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책도 아니고 무언가 깔끔한 마무리를 위한 지침서도 아니다. 스님의 삶은 성찰이며 반성이고 나눔이며 배려이고 자연이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한 해의 마지막에 새겨본다.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야 시작이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생활의 기본자세로 삼고 있지만 태로 게을러지고 긴장의 끈을 놓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삶은 그저 계속될 뿐이다.

  새로운 결심이나 눈부신 희망은 없다. 오래처럼 치열하고 숨가쁘게 스스로를 몰아낸 적도 없을 것이다. 이제 조용히 살아온 시간들을 반성하고 남은 시간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말은 말로 끝난다. 스님의 지극히 당연하고 좋은 말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반성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은 매년 반복되는 행사가 아니다. 모든 삶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행동의 실천 원리가 되어야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는 모든 시작의 순간을 의미하는 순환 고리의 처음일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한 단순해지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08123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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