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누구나 안정적이고 확실한 미래를 욕망한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예측 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열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학과 과학의 발달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전에 비해 100만 배 복잡해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200년 전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힘든 현재를 살고 있다. 그래서 경험론적 회의주의자는 말보다 행동을 중시한다. 각종 데이터와 통계를 프로그래밍한 이론과 시뮬레이션과 정교한 법칙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허무주의와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 9.11 테러를 예견한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의심과 황당함은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나아진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이성이 발달하고 시스템이 정교해지면서 보다 안정적이고 확실성이 높은 사회 구조를 만들어간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이전보다 불안정성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역사는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약한다는 작은 제목들에 주목하며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꼼꼼이 읽었다. 심리학과 경제학과 철학과 수학과 통계학과 사회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탁월한 저서라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통찰의 힘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철학적 사유에 의해서 혹은 통계적 분석에 의해 또는 경제적 지표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통찰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인간들의 ‘확인 편향의 오류’로부터 출발해서 사고의 맹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수없이 반복했던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검은 백조’라는 선명한 상징을 통해 예측 불가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검은 백조가 발견된 순간 우리의 상식과 믿음과 경험적 지식은 모두 전복된다. 이러한 사건은 사회 곳곳에서, 경제 현상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연구와 실험을 거쳤다고 자부하는 이론과 시스템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한다. 결국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인가? 극단적 회의주의와 허무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범하고 있는 오류들에 대한 솔직하고 직설적인 비판이고 자기반성이다.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문제라면 이 책은 정확하게 문제를 찾아내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현장의 허슬러만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감각과 다양한 이론과 예시들을 통해 저자는 이 모든 허약한 예견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인식의 귀족으로 극찬하는 몽테뉴와 끝까지 경의를 표하는 칼 포퍼를 제외하고는 저자에게 비판받지 않는 경제학자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냉정한 시선은 예외없이 정상분포곡선을 창안한 가우스에게 겨누어진다. 그 수학적 진실과 현실의 적용 불가능성에 대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 저자는 칼끝을 철학자들에게 돌린다.

우리는 입증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례들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관찰된 사실들로부터 보편적 규칙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틀렸다. - P. 121

  지금까지 믿었던 사회와 경제에 대한 관점을 모두 폐기처분하라는 극단적이고 혁명적인 선언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의 의도는 분명히 지나치게 복잡한 경제, 사회 분석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인다. 책 곳곳에서 비춰지고 있지만 수학자나 경제학자들로부터 통렬한 비판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논리적이며 우리가 반복했던 실수들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고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의 논의는 단순하게 이론적이거나 책상머리에 앉아 잔머리를 굴리는 종류와 거리가 멀다. 실전에서 익힌 감각을 바탕으로 경험적 회의주의가 단단한 기초를 이룬다. 그 위에 이론적 토대와 실명 비판이 더해지는 실제 사례들은 예상 반론까지도 차단하는 논리 구조를 갖추게 된다. 물론 저자의 수학과 경제학에 대한 이론들이 정교화되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연구와 합리적인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할 듯 싶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대해 쉽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이 주장하는 이야기의 오류들은 사실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성찰과 비판의 시간을 전해 주었음에 틀림없다.

  니체가 꼬집었던 ‘교양속물(buildingsphilister)’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저자는 아랍인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 고향집이 어찌되었는지 모르는 저자의 개인사와 그의 생각이 완벽하게 분리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외자의 시선으로, 제 3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 밖에서 현실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대한민국의 2008년이지만 검은 백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극단의 힘과 마이크로 트렌드가 미래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미래 예측을 모두 비웃는 검은 백조를 만났다.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이 책의 부제가 현실에서 마주할 때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오는지 우리는 매일 매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그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검은 백조는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상상!

기억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검은 백조라는 사실이다. - P. 464

08122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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