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낸다. - P. 17 흑백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은 부재를 증명한다. 현존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그리움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에게 지나간 시간은 다가 올 미래보다 찬란하다. 과거지향형 인간이 아니더라도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것들은 과거의 결과물이라는 것임을 절감한다. 이 모든 삶의 비극은 일회성에서 비롯된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혹은 간절함. 단 하나의 문장으로 사유의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상황과 맥락에서 벗어나 몽환적 상상의 세계를 주유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다 창밖을 내다보며 하늘을 쳐다보고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낄낄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소설은 사건 전개의 흥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우의 소설집 <오래된 일기>는 빛바랜 누런 일기장의 표지를 들추는 것처럼 아득하다. 타인의 삶이 보여주는 진정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그의 소설은 아름답진 않지만 독자를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과연 우리들 삶의 결에 배어있는 무늬들은 어떠한가. 수많은 빗금들과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들 사이로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는 마음으로 그의 소설들이 읽혔다. 소설집을 읽고 나서 다시 차례를 보면 단편의 제목들과 내용이 뒤섞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단편들은 선명하게 떠오르며 각 단편들이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충격적이고 특이한 사건들이 모여 독자에게 각인되는 소설들은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평범하고 전형적인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찬찬히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서로 부대끼며 상처받고 아파하며 서로 위로 받기도 한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불행’의 친구들이다. 하지만 그 불행이 낯설지도 이물스럽지도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건 아마도 우리들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도 들춰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는 부조리하다. 인생은 불편하며 삶은 신산스럽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우리들의 마음과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다. 그 목소리는 불협화음이다. 행복을 가장한 생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행의 그림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모두 행복을 기원하지만 아무도 불행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는다. 그 원인과 과정을 정면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이승우는 그 마음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을 보여준다. 나는 그들이 불편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애련하다. ‘오래된 일기’의 규가 그렇고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의 상규가 그러하다. ‘타인의 집’의 그녀는 ‘나’를 볼 수 없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인식할 수 없다. 공감이라는 심리적 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유추를 통해 그 마음을 짐작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너가 될 수 없고 너는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기본전제를 부정할 때 불행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기수 이야기’와 ‘실종 사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조적 모순 속에 불행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외로움과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불행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물론 작가는 그 불행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주목한다.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자세로 그것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나뉜다.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혹은 불가해한 불행에 대해 성찰하기도 하는 것이 ‘방’의 할머니일 것이다. 이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정남진행’과 ‘풍장-정남진행2’는 만남과 떠남이라는 아주 오래된 주제를 변주하고 있다. 정동진이 아니라 정남진이라는 다소 생경한 공간을 통해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곳에 가고 싶은, 그러나 가지 못하고 죽은 여자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슴앓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섬의 일부가 되어 버린 남자는 과거와 현재 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그것은 내게 운명과 우연의 차이로 읽혔다. 숙명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인생은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고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재미없는 연극일 뿐!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신음처럼 내뱉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떳떳한 일일까. - P. 34 그래서 문득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이라는 깨달음.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작아지고 한없이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도 떳떳한 사람이 없다는 비극의 확인. 오늘도 우리는 세계의 불행과 직면했으며 하루를 살아냈다. 소설가는 운명적으로 그 불행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이승우는 그 역할에 충실했다. 독자는 <오래된 일기>를 통해 작가의 일기를, 아니 우리가 차마 쓰지 못한 일기의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그것이 작가가 보여주려 했지만 우리가 읽지 못한 이 책의 나머지가 될 것이다. 08121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