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은 어쩌면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오래된 저장 장치일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아득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 기억들이 고스란히 내 것인 경우는 없다. 편집되고 채색되며 과장되거나 축소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답게 혹은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된다. 사실, 객관적 기억이란 건 없다. 심리적인 기재가 작동하기도 하고 왜곡된 감정이 개입되기도 해서 비틀어지고 희미하며 모호하다.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한 시대의 역사가 되는 경우, 우리는 그 삶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삶에 앞서 공적인 기록이며 기억할만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은 온몸에 불을 지른 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녀의 구술을 기록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를 읽다가 여러 번 목이 메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이 시대 어른의 기억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간직한 기록이고 역사이다. 신산스런 시대의 아픔이고, 피눈물로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굴곡진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한 순간 불꽃처럼 살다 가버린 아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어떻게 살아도 한 세상이었겠지만 그녀가 감당했던 모진 시간들 앞에서 저절로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

  “엄마, 배가 고프다…….”는 전태일의 마지막 말에 엄마 이소선은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이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가져야했던 당연한 권리와 당연한 임금을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말과 맞바꾸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팠고 고통스러웠으며 말하지 못했고 잠들지 못했던 시간들을 견뎌왔다. 그 중심에서 우리들의 어머니 이소선은 묵묵히 그들에게 밥을 먹이고 혹독한 시간들을 살아냈으며 이제는 여든의 노인이 되어 지나간 시간들을 말하고 있다.

  구술한 내용을 정리해서 이 책을 쓴 오도엽은 ‘인간의 역사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말로 이 책의 의미를 갈음한다. 우리들의 기억에 한계가 있다면, 그것이 언젠가 망각의 강을 건너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기록한다. 이 책은 이소선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역사이며 잊어서는 안 되는 이 시대를 살아 낸 노동자들의 기억이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 찾아갔다가 이소선의 마지막이 아니겠냐는 인사가 인연이 되어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이소선의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그대로 구술되어 있다. 너무나 정감있고 친근한 그 목소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의 말투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온 시간이나 지나온 흔적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남자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고통과 시련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그녀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었다.

  가난한 날의 질긴 인연으로 결혼하고 전태일을 낳고 쌍문동에서 살다가 아들에게 근로 기준법을 배우고 그 아들을 먼저 보낸다. 그 이후 이소선의 삶은 많이 달라진다. 생활환경이 바뀐 것이 아니라 태일이 대신 아들들이 더 많아졌다.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해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이 땅의 노동현실을 바로 보게 되었다.

  2008년에 이소선의 기억들을 더듬어 가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서 받아주지도 않는 현실이 되었다. 노동자들 사이에도 계급이 생긴 것이다. 국민 총생산은 늘었고 굶어 죽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부의 분배 문제와 노동 문제는 여전히 폭력적이다.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문제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이소선의 기억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하종강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악수를 하다가 울컥했다. 몸이 약해지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멀리서만 바라보던, 일당백의 역할을 해 오신 그분들의 모습은 이제 우리 시대가 기록해야 한다. 그분들이 떠나고 난 빈자리를 또 다시 이 땅의 후배들이 채워나가야 한다. 아니 어쩌면 그 자리를 더 이상 채울 필요가 없는 시대가 와야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돌아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경쟁 시대, 신자유주의 물결과 세계화는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발 빠른 종부세 환급 등의 정책은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누가 뽑은 대통령이며 누가 만들어준 정부인지 국민들은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영화 <월․E>에서 이브가 고장난 월․E의 부품을 갈아 끼우자 잠시 기억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기억은 그런 것이다. 살아온 삶의 무늬가 우리의 정체성이고 역사의 흔적이다. 그 딱딱하고 거친 숨결이 우리들의 기억이며 과거이다. 현재는 과거의 꿈이었고 미래의 흔적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시대의 삶은 수많은 이소선에게 빚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소선의 여든이 기억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가 아니라 오로지 과거였다고 믿고 싶은 것은 순진한 꿈에 불과하다. 현실은 혹독하다. 다만 ‘희망’이라는 환각제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들의 어머니 이소선의 기억을 통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꿈 꾸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우리에겐.

  언제가 떠나게 될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조차 없다. 개인의 미시적인 관점이 모여 역사가 된다. 대통령의 행적과 외교 문서가 아니라 바로 이소선의 삶의 흔적, 시대에 대한 기억이 역사와 기록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우리는 더 많은 이소선들을 읽으며 현재를 확인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바로 그들이 만들어 낸 작은 진보의 발자국일 뿐이다. 그 흔적들을 돌아보고 발자국의 방향을 따라 걷는 것조차도 힘든 시대가 슬픔으로 다가온다.


08120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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