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잠시 움찔하게 된다. 대상과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질문은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사랑은 그만큼 절대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있을까? 누구에게 배워 본 적도 없고 그 실체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아는 것은 보잘것 없다.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놀이하는 인간, 정치적 인간, 언어적 인간 등등. 그 많은 특징 중에 고미숙은 ‘사랑’을 집어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고미숙의 사랑 타령은 깊이 새겨 들을 만하다. <호모 에로스>는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인간에게 사랑이 무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사랑의 비법과 관점들을 쏟아내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속된 사랑의 노래를 제창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사랑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고 그 대안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사랑도 철학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방법도 필요하며 방향과 목적도 필요하다.

  공부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라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성 사랑, 쇼핑에 중독된 사랑법에 대한 일침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똑같은 패턴과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아니 영원한 사랑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자신을 찾지 못하고 타인에게 기대고 의존하는 것은 감정의 소모일 뿐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랑의 슬픔은 이별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아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듯 한 상실감은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하는 데서 그 비극이 시작된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랑은 누가 하는가? 사랑의 주체는 누구인가?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서 끝이 난다.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 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 P. 15

  사랑을 하려거든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하여 보아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던 대학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목숨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거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깨닫지도 못했다.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라는 생각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참 많은 경험과 상처가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을 왜 공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자만심 때문일까? 아니면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알아도 몰라도 일단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면 똑같은 증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알수 없는 노릇이다.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건 마치 어린 아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계속 끼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다. - P. 16

  저자는 이러한 사랑의 출발점을 ‘나’로부터 시작한다. 실연은 행운이며 에로스는 쿵푸라는 선언은 가벼운 장난처럼 들리지만 실전에서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하는 사랑을 경계하는 선언들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사랑의 의미를 근본부터 파헤치고 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해 조목조목 비틀고 딴지걸면서 현실에서의 사랑법들을 비판한다.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진단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를 붙잡고 내뱉은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오랬동안 회자되었으며 기억에 남는 대사다. 많은 사람이 할 말이 많은 대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불멸의 판타지를 꿈꾸는 모든 연인들의 환상에서 비롯된 마약같은 주문일 뿐이다. 사랑은 변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고 증오이며 상처이고 슬픔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대상들이 무엇인가? 국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욕망의 배치에 따라 연인들은 흘러가고 쇼핑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도 불가능하며 자동차가 곁들여지지 않은 사랑은 사랑도 아니라는 비참한 현실. 그래서 청년 문화는 사라지고 대학은 황폐화되고 있으며 모든 가치는 화폐로 환산되는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자화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랑이라니?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사랑법은 무엇인가?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화폐권력에 저항하고 사랑하는 순간부터 책을 읽으라는 저자의 충고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사랑의 주체가 되어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 나의 감정 타인과 나의 교류와 소통으로 보는 관점이 바로 저자의 사랑법이다. 그래서 감히 힘차게 외친다. 청춘이여, 욕망하라!고.

  사랑은 아무나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의 절반만큼 많은 수의 사랑법이 있겠으나 인문학적 관점에서 현재의 사랑을 통찰하는 방법 또한 신선하다. 사랑은 오늘도 계속되겠지만 사랑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른다면 아는 척하지 말고 사랑 공부를 시작해 보자. 즐겁고 신나게. <호모 에로스>와 함께!

081125-133


댓글(0) 먼댓글(2)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54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2.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1 12:02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