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 권력전쟁 - 사이버 세계를 조종하는
잭 골드스미스 외 지음, 송연석 옮김 / NEWRUN(뉴런)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신기술은 누구나 금방 손쉽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정치적 국경을 사실상 지워버릴 것이며, 자유무역을 보편화시킬 것이다. 기술 발전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인이란 없으며, 우리는 점차 공동의 언어를 채택해나가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19세기 후반 전보가 발명되었을 때 나온 말이다. 그로부터 100년쯤 후에 우리는 인터넷을 만난다. 1990년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출근부를 인터넷에 찍어야했던 문화적 충격은 아득한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넷스케이프 2.0의 아이콘은 등대였다. 캄캄한 정보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는 상징적이었다. 10여년 만에 인터넷 세상은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인터넷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어느 것의 역사든 과거는 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권력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계를 조정하는 권력에 대한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터넷은 미국의 국방부에서 탄생한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이것이 발전되면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본다. 도메인 네임과 프로토콜 그리고 루트 서버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공상 과학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현실 세계의 강력한 실력자가 있고 그들에 의해 사이버 세계가 조금씩 확장되었다는 사실은 세상을 창조한 후 무한히 팽창되어 나가는 또 하나의 우주와 유사하다.
이 무질서한 세상에는 항상 실제 권력과 자본들의 쟁탈이 치열했다.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충돌은 인간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하며 흥미롭다. 각국의 법률과 문화는 국경 없는 인터넷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현실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프랑스 법정에 선 야후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현실적인 국경과 영토로부터 해방을 시도하고 인터넷 혁명을 꿈꾸지만 결국 현실에 의해 지배되는 인터넷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조주 존 포스텔의 루트 권한 달환 시도는 싱겁게 끝나버린다. 결국 미국 정부 소유가 되어버린 인터넷은 국경 없는 아나키즘이 실현된 민주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다. 검은 그림자와 숨은 권력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더구나 사이버 공간의 자유와 질서는 보이지 않는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공간 개념과 지리적 구분은 인터넷에서도 통용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법률이 충돌을 일으키면 분쟁이 생기고 각국의 제도와 법률에 따라 통제된다. 가장 극명한 예로 중국을 보여준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네트워크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알게 되었고 특히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야후가 중국 정부의 통제 시스템의 하수인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은 우울해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과 권력의 힘은 현실을 너머 이미 사이버 공간을 장악한 지 오래라는 이야기다.
결국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민족주의와 인터넷의 결합은 교묘하게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적절한 통제와 눈부신 발전 속도는 중국 인터넷의 아이러니다. 재미를 너머 우려와 슬픔을 자아낸다. 소위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통제와 관리는 자유롭과 자율적인 인터넷의 특성과 상극이다. 그 한계와 자정능력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판 소리바다 냅스터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파일 공유 운동의 시작과 결말은 음반업계의 막강한 로비와 자금력, 미국적 풍토, 저작권 등과 어우러져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하지는 않았으나 비교적 많은 정보과 고민거리를 얻었다.
이 문제도 결국은 정부의 규제와 법률을 통한 정리가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므로 당연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터넷의 영향력과 발전 속도는 단순하게 현실 생활과의 관계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상존한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진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지속적이고 꾸준한 연구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역으로 정부의 통제를 이용하여 성공한 이베이ebay를 저자는 승자라고 칭하고 있다. 무정부 상태와 독재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것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딜레마라면 결론은 쉽지 않다. 그 다양성을 토대로 각기 다른 룰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국경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역외 적용성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이 간다. 세계법의 필요성과 한계를 통해 앞으로 정부의 통제와 세계화의 충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는 우리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바로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강국, 통신 인프라가 거의 완벽하게 갖춰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문제 특히 국가 간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터넷의 권력 전쟁은 현실 세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치열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결국 인터넷은 또 하나의 세상을 꿈꾸었지만 현실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은 혁명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고 보다 자유롭고 변화 가능성이 풍부한 가상 현실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그 꿈은 어떻게 전개 될 지 알 수 없으며, 변화의 진폭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081114-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