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초베스트셀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궁금하면서 읽지 않는 버릇이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거나 타인의 취향과 다를 수 있거나 관심 영역이 아니거나! 그런 경우 대부분 금방 잊혀지거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책도 유행이 있고 흐름이 있어 그것을 쫓다보면 신간에 목숨 걸게 된다. 내가 책을 읽는 패턴도 신간과 고전 놓친 책들의 조화를 꾀하지만 쉽지 않다. 선택은 신중하지 못하고 편식을 하게 될 때도 있고 다양한 관점을 잃기 쉽다. 하지만 곧 잊혀지지 않거나 계속 관심이 가거나 호기심이 늘어나는 책은 읽는다. <88만원 세대>가 그런 책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시작으로 <직선들의 대한민국>,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괴물의 탄생>를 읽고 <88만원 세대>를 읽는 느낌은 색다르다. 작년 8월 1일 처음 펴낸 책이 올 9월 22일에 14쇄를 찍었다. 내용에 앞서 눈에 띄는 놀라움이다. 많이 팔리긴 팔린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열었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책이지만 3, 4권부터 읽고 올라와도 크게 차이가 나거나 다양한 관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시리즈의 처음에 걸맞게 거시적인 문제들과 사회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참신하다. 거침없는 발언과 색다른 관점은 이 책이 많이 팔린 이유들을 증명하는 듯하다. 단순한 경제학 이론 서적이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2007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될 듯하다.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 틀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라는 관점의 안경 중에서도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몇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접근 방식이다. 경제학의 주제가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20대가 중심에 우뚝 서 있다. 그것을 둘러 싼 세대와 세대의 관계를 살펴보고 유럽의 사례를 통해 우리들의 문제를 짚어낸다. 또한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비교경제학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여기에는 물론 역사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전제된다.

  기업의 마케팅 대상으로나 관심을 받는 세대인 2007년 20대를 우석훈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대의 특성과 그들의 갖는 독톡한 경제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게 분석하다보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짐작하게 된다. 이 책의 목적이 박권일의 말대로 20대에게 ‘희망고문’이 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내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리 승자독식 시대가 도래 한다고 하지만 시대의 중추에 설 날이 온다고 믿어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두 저자도 이 책을 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발칙하고 흥미로운 도입은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넘어 충격을 준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극장 상영 전 ‘대한 늬우스’와 ‘애국가’가 시대의 코미디가 된 것처럼 10대들의 첫 섹스와 동거 문제는 당연한 현실에 대한 돌 던지기다. 동거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들이 왜 문제인지 침착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선진국의 사례를 들려주고 자연스럽게 대학등록금과 대학의 서열화 문제 그리고 1318 마케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리에겐 꿈같은 대학 등록금 50만원. 공공의료와 교육 정책들이 이루어진 배경과 과정은 단순한 동경을 넘어 실현하기 어려운 먼 나라의 혁명으로 들린다. 아니, 혁명이 맞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그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가 조바심이 날 뿐이다. 10대들이 이룩한 프랑스의 대학의 공립화와 번호 추점은 68세대의 힘을 넘어 선 엄숙함이 느껴진다.

  현실은 한 번도 우리에게 ‘꿈’을 말해 준 적이 없다. 그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실현 가능한 꿈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고문에 가까울 때가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과장된 해석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우울한 미래와 10대로까지 이어지는 생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땅의 모든 10대와 20대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문제는 그들의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이 세상에는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기득권과 헤게모니를 장악한 기성  세대들의 각성과 해법이 없다면 이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가 될 것이다. 20대가 만나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암울하기만 하다. 자조와 절망을 안겨 준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이고 우리 모두의 과제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눈물겹던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닫는 글 ‘교육 파시즘의 시대, 학교 파시즘에 부쳐’가 생각난다. 지금의 20대가 겪어야 했던 혹은 그들을 양산한 세대들의 반성과 비판은 과연 합당한가. 10대와 20대는 지금 이러한 경제적 상황과 세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가. 그 대안과 합립적인 문제 해결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당연히 불가능한 무모한 질문이다. 일자리를 찾아, 알바를 위해 목숨을 건 무한 경쟁의 시대에 배부른 고민은 누가 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넌 누구냐고, 어떻게 사느냐고, 그렇게 살거냐고, 우리 모두 이렇게 계속 지낼 수 있겠냐고.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제 2 부 3장 ‘바리케이드와 짱돌의 기원에 관한 고고학적이며 기능론적인 고찰’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지금 우리 20대를 위한 명명법. 88만원 세대는 비정규직 평균 임금에서 20대가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토익, 토플, GRE 점수가 아니라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이다.

  어느 시대가 희망으로만 가득했겠는가? 역사에서 어쩌면 단 한 번도 그런 순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희망이 고문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로 변화하려면 내 목소리와 실천과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다. 절망은 희망의 그림자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바보들의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똑똑한 척 하는 바보다. 그 사실만 빨리 인정한다면 길은 의외로 쉽게 만들어 질 수 있다. 88만원 세대는 오늘도 안녕하신가. 또 나는 어떤가?


08110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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