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길들이기 - 로마 몰락에서 유럽 통합까지 다시 쓰는 민족주의의 역사
장문석 지음 / 지식의풍경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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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은 지 10년 쯤 됐다. 공식 행사에서도 가슴에 손을 올리지 않고 그냥 서 있다. 입으로 맹세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단순한 치기와 저항이 아니다. 민족은 무엇이며 내개 조국은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러하다. 맹목적인 충성과 복종의 강요는 군대에서부터 아니 생내적으로 심한 구토를 유발한다. 모든 억압과 굴종으로부터 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보이지 않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의 음모는 계속된다. 그것은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체제와 현상을 미화하고 내면화시키려는 시도가 지속된다. 그러나 그 마지막 향수와 추억은 과거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한 ‘민족주의’라는 쓰레기는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역사의 교훈과 시행착오 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광기와 폭력이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근대와 탈근대적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문제는 단순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한 것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개인이 속한 계급적 이익과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자리한 위치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학의 부재와 얄팍한 지식은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고 넓고 깊은 통찰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민족주의가 정리되었다. 쉽게 말문이 트이지 않겠지만 이 한 권의 책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객관적 시각과 안목이 생겼다. 특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야겠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1~3>, <감시와 처벌> 등을 통해 역사철학적 방법으로 현대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인류가 밟아온 지난한 과거를 통해 하나의 현상을 고찰하는 일은 가자 알기 쉬운 방법이면서 가장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다.

  장문석은 <민족주의 길들이기>에서 ‘민족주의’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더듬고 있다.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로마 몰락에서 유럽 통합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의 역사를 꼼꼼하게 더듬고 있다. 민족주의에 관한 책을 원할 때 필독서로 권장할 만하다. 저자의 수고와 내공이 녹아 있는 책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아니 내가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던 민족주의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산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었다. 물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어줍잖은 사유의 결과물들이기도 하지만. 그 실체가 불분명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어왔고 최근까지 분쟁 지역에서 어떤 힘과 영향을 발휘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차라리 고통스럽다.

  털없는 원숭이들의 미신과도 같은 민족에 대한 신념은 우습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nation의 번역어이다. 어휘와 개념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어졌지만 국가 보다는 민족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 기원에 걸맞는 듯하다. 이 책에서 민족은 서구의 차가운 민족주의와 동양의 뜨거운 민족주의로 나뉜다. 여기서 차갑다는 말은 정치 공동체에 기반한 민족을 의미하고 뜨겁다는 말은 종족적 기준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이것은 데모스(민주주의)와 에트노스(종족)의 차이이기도하다. 물론 서양 안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데모스적 성향이 강하고 독일과 이탈리아는 에트노스에 가깝다고 분류한다. 하지만 이 냉정과 열정의 차이는 이분법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다양하고 복잡한 정치, 역사적 상황 맥락 안에서 뒤집히고 흔들리며 접점을 찾아가는 고단한 시간을 거쳐왔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세기 초 본격적인 민족주의가 등장했던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에 두고 있다. 1장은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과 연구사를 정리하고 있어 다소 딱딱하지만 주의깊게 읽어두면 나머지 장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3장은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유럽의 역사에서 종족과 민족을 다루고 있다. 중세유럽과 영국과 프랑스가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5장과 6장은 민족주의 이후 남동 유럽과 파시즘의 등장 그리고 공동체로 거듭나는 유럽연합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역사가 전제되어 객관적인 사실을 정교하게 다듬고 그것을 해석하여 하나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솜씨는 전적으로 저자에게 달려있다. 지루하지 않고 쉽고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흑백이나마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영화 이야기도 간간히 등장한다. 저자의 땀방울이 곳곳에 배어 있는 책을 넘기는 독자는 행복하다. 이 책은 오래 두고 참고할 만하고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에필로그로 쓴 ‘반쪼가리 자작의 우화’가 인상적이다. 민족은 어쩌면 선과 악의 봉합되지 않는 몸뚱아리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저자의 말대로 종족이 민족으로 리모델링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고 싶어졌다. 인류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간다. 민족주의도 과거를 통해 미래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유럽 통합을 넘어 새롭게 번져 나가는 제국주의의 망령과 파시즘의 부활 조짐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는 심상치 않는 기운이다. 꺼진불도 다시 봐야 한다!

  “민족주의는 개인이 최고의 충성을 마땅히 민족에 바쳐야 한다고 믿는 신조이다.”(P. 25)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민족들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문화적 노력 외에도 국가 구조를 민주화하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좀 더 많은 대표성과 민주주의야말로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가장 유력한 방식일 것이다. 역설은 그런 대표성과 민주주의를 증진시킨 것이 민족주의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P. 344)는 말로 끝나는 이 책은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처럼 순환고리를 형성하는 듯하다. 제목처럼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일은 뱀이 제 꼬리를 물고 제자리를 도는 일과 같지는 않겠지만 억압과 폭력이 아니라 대표성과 민주주의의 결합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08110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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