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50년쯤 쓰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연필을 들면 저절로 시가 써질 것만 같으다. 모든 언어가 조화를 부려 종이에 펜을 대는 순간 막힘없이 자유롭게 배열될 것만 같으다. 고은의 50주년 기념 시집을 읽으며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시를 쓴 사람에 대한 경의로움에 젖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여백을 남길 것이다. 모든 관계와 모든 사물들을 무화無化시킨다. 신작 시집 제목은 그래서 <허공>일까? 빈 공간에 그려내는 절제된 언어의 진경은 예사롭지 않고 나이를 넘어 그의 전성기가 어디인지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고은이 보여주는 시는 지금부터까 아닐까? 추억 하나 사랑이든 사랑의 밑창 미움이든 그것 뛰어넘어서 너 거기 허공에 대고 총을 쏘아보았어? 나는 열일곱살 때 용케 살아남아 미 육군 이탈사병 오웰의 M1소총으로 허공 거기 대고 세 발 네 발 연발로 쏘아보았어 허공은 적이 아니더군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오 킬로미터쯤 육 킬로미터쯤 갔을까 가는 동안의 직선이 포물선으로 바뀌어 끝내 검불 하나도 건드릴 힘 없이 툭 떨어질 때 거기가 내 저승일까 어디였을까 아직도 나 이승의 은산철벽(銀山鐵壁) 여기 줄곧 처박혀 있어 땅끝 해남 땅 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 잘못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천근의 회한 내버리고 여기 술 먹은 밤 파도소리에 먼저 온 누구의 이승이 혼자 떠 있습니다 추억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사랑도 미움도. 시간 속에 녹슬어 버린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어보는 老詩人에겐 무엇이 보였을까? 경험한 것 이상은 쓸 수 없는 것이 작가의 한계라지만 사유의 진폭은 직접 경험을 뛰어 넘어 환상과 상상의 공간을 오가기도 하고 생각의 갈피들을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고은의 시는 땅끝에서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술 먹은 밤 파도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지난 날들과 회한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다. 단정한 시들이 뿜어내는 조용한 목소리는 듣기 좋게 공명된다. 갈망 혼간 허울 바람에 날리는 영광들의 한 생애 얼룩졌다 번뇌들 맹신들 다 두고 여기 왔다 서해 저녁 밀물 앞에서 한동안 나는 올데갈데없다. 밤비 소리 천년 전 너는 너였고 천년 후 너는 나이리라 어김없으리라 이렇게 두 귀머거리로 너와 나 함께 귀 기울인다 밤비 소리 자연에 몰입하는 노년의 일반적 경향으로는 볼 수 없다. 선시처럼 의미의 충돌과 비약이 없고 가볍거나 즉흥적이지 않다. 깊은 사색의 결과이며 언어 이전의 세계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손에서 놓여난 모든 욕망들, 삶과 죽음들 속으로 천천히 산책하고 싶어진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아니어도 좋다. 가랑잎에 부대끼는 낮은 곳으로 흘러드는 모든 물소리, 소리들. 바다에 모이자는 약속들일지도 모르겠다. 한 편의 시는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혹은 환상의 나라로 이끌어 주는 동화의 나라가 되기도 한다. 내게. 후배에게 국가는 섬세할 수 없단다 국가는 그냥 왈패란다 그럴수록 문학은 섬세해야 한단다 자네 문학이 행여나 떠밀리고 떠밀려 변방 읍내 호프집에 처박히게 될지라도 낙담 말게 더더욱 외따로 고개 저어 섬세하고 섬세할 노릇일세 장차 그 섬세함의 장관이라니 고은의 작은 문학론은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국가가 왈패라면 문학은 섬세함이라는 단순한 언명이 깊이 울린다. 문학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고은이 보여준 이력들은 묵언으로 보여준다. 그가 노벨상 후보에 오르든 말든 중요한 것은 그의 시를 읽는 것이다. 세간에 관심은 노벨상이 아니라 그의 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죽음’, ‘여생’, ‘무한’을 골랐다. 이쯤 되면 시인도 생의 황혼에 대해 죽음과 허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탐욕과 허욕으로부터 자유롭고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두려움의 끝에 대해 가만가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시인은 자유를 얻었을까? 죽음을 보며 오랜 두려움 끝 이제 두렵지않다 오전의 하늘에 없던 구름이 슬쩍 와 있다 구름 밑 산이 간다 산 밑 산그늘이 간다 그동안 내가 나에게 목숨 바쳤다 정말이지 죽음은 남이 아니다 아니구말구 여생 감히 고백하건대 저는 안이 아닙니다 밖입니다 저는 이 나라 안의 고아가 아닙니다 무한 밖의 미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무한 이 무한가능 하염없는 백지 없이는 저의 여생 하루도 한나절도 숨막혀 살 수 없습니다 탐욕이 아닙니다 허욕이 아닙니다 절절히 현실 뒤켠 아스라이 백척 낭떠러지입니다 나는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생기는 것인줄도 모른채 반편이처럼 자유에 대해 늘 고민한다. 자유는 어떤 상태나 상황이 아니라 완전한 무애無碍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자유롭다는 의식조차 없어진 마음의 상태가 가능한지 모르지만 50년쯤 시를 쓰고 나면 혹여 그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고은의 詩와는 무관하게. 081028-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