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울한 환상과 성적 자극들이 모여 빚어내는 회색빛 소묘.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는 최근의 내 감정 상태만큼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한 무채색으로 가득하다. 그 원인은 차치하고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는 방식과 현실에서 발현되는 모습들이 무성영화 시대의 흑백필름을 보는 듯했다. 우엘벡의 이 소설이 낳은 수많은 논란은 지극히 당연하다. 누가 이 소설의 의미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끝없이 복잡한 미로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출구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 오히려 행복할 것이다. 마음의 갈피 사이로 난 오솔길들, 상처 난 길섶의 들풀들, 흐린 하늘 아래 비추는 한 줄기 해살과 같은 형언할 수 없는 이미지와 숨결들이 배어나오는 소설이었다. 어떤 작품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독자의 감정이 이입되거나 영혼이 투영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며 동경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효과를 나타내고 상반된 평가를 받기에 충분할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삶의 대부분을 20세기 후반기에 서유럽에서 보낸 한 남자의 이야기다. 최고 수준의 생물학자 미셸 제르진스키가 실종된다.

그리하여
오늘 처음으로,
우리는 옛 시대가 어떻게 종말을 고했는지 돌이켜보고자 한다.


  는 말로 프롤로그가 끝나면서 한 남자가 이야기는 시작된다.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를 대표하는 이 인물은 기독교로 설명될 수 없는 시대정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20세기 말의 특별한 인물 유형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다른 미셸의 형 브뤼노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자라난 아이가 아니다. 동생 미셸 또한 한 어머니에게서 서로 다른 아버지의 아이들이 태어났으니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삶을 예고한다. 그들 형제는 만나게 되고 서로의 생을 위로하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며 고독과 우울 속에서 생을 버텨낸다.

  어린 시절 기숙사에서 당한 브뤼노의 모욕도 그토록 사랑했던 아나벨을 잡지 못하는 미셸도 결국 다른 몸에 숨어 있는 두 개의 영혼처럼 보였다. 그들이 드러내는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설다. 68세대와 그들의 공동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허위의식과 개인의 부조리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겨준다. 길가에 떨어진 동전 지갑을 줍듯 탄핵사태에 대한 반발과 분노로 국회의원이 된 386들의 정치 행태가 떠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소설이다.

  적확한 심리 묘사와 내면 풍경은 기막힌 묘사와 적절한 어휘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오힐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실들을 건조하고 냉랭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뱉어내듯 한다. 프랑스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로 기억될 것이다. 우엘벡이 의도적으로 논란을 예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성적인 부분에 대한 묘사나 등장인물의 취향뿐 만 아니라 그 원인과 삶의 과정들이 때론 불편하게 때론 어색하게 소설 속에 녹아 있다.

  한 인간에게 있어 고통이란 숙명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잘 견디지 못하고 극한적인 반응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살을 하기도 하며 과장된 목소리로 울부짖기도 한다. 그러나 섣불리 그만큼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교가 불가능하며 실존적 고민의 깊이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우리는 오히려 연민을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회상과 현재의 삶을 연결시키는 연대기적 서술에 의존하면서 미래 사회까지 진단하는 이 소설을 쉽게 규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통해 보여준 미래 사회를 이 소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탁월한 예지력은 이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1998년에 출판된 이 책의 미래는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10년 만에 커다란 기술의 진보나 생물학적 변화를 예고 했다기 보다는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시인으로 데뷔한 작가라고 하는 데 읽어 본 적이 없으니 뭐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서사와 사건 중심의 소설이 아니라 섬세한 개인의 내면 묘사, 때때로 과거의 기억을 들추는 건조한 목소리가 오히려 읽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땀과 태양이 엉겨 붙은 바람 한 점 없는 바닷가의 적막감. 작가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독자는 소설의 한 복판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당장 책장을 덮고 시원한 맥주를 목구멍에 들어붓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 이 소설의 백미다.

  이 책은 시간의 모래 속에 사라져갈 우리 모두에게 경의를 바친다. 우리의 삶이 어떤 형태로 이어질 것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그 삶의 결들이 보여준 무늬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제르진스키가 사라진 곳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우엘벡이 무엇을 보려주려 했든지 이 책은 내게 고통과 우울의 진한 페이소스를 안겨주었다. 자, 이제 밤하늘을 향해 기지개나 한 번 켜볼까?


08102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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