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는 작가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 면에서 성석제는 몇 안 되는 행복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독자들의 사랑과 생계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까? 모든 작가들이 보험을 가입하듯 대학에 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최종심에 오른 교수 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용기이다. 개인사적인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활인으로서 고충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작품 자체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30년대 신비평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으나 작품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배경이나 현실의 문제를 제거하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석제의 소설도 예외일 수 없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해설을 맡은 이경재의 말대로 ‘방외인’들이다. 평균보다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들 말이다. 그것이 설정이든 진솔한 모습이든 토요일 저녁 가끔 보게되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들과 유사하다.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다가서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고 반대편 끝에 서 있는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없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성석제의 소설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특별한 사람들의 황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여서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성석제 소설의 근간을 이룬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라고 하는 소설의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는 듯하다. 독자들은 허리띠를 풀고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졸기 직전의 나른한 상태에서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예민한 감각과 긴장은 필요없다. 좌우로 입술을 당겨줄 근육과 아무생각 없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만 하면 된다. 이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운 소설이 있을까 싶다. 성석제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소설이라는 형식도 기본적인 틀도 때로는 그에게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마지막 단편 ‘깡통’의 경우 화자가 직접 소설 속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형식적 장르를 떠나 ‘이야기’라고 하는 가장 원초적인 작업에 가까워지는 그의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목으로 사용된 <지금 행복해>는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면서 작품 전체를 드러내는 은유에 해당한다. 과연 사람들에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사람마다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도 방법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 그 접근 방식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정교한 구성은 아니지만 평균에서 벗어난 황만근과 같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반성적 성찰이 아니라 유쾌한 공감이며 자각이다. 물론 그 웃음에서 숨어있는 예리한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웃음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섞여있다. 성석제 특유의 문체와 발랄한 감성이 어우러져 재미와 유쾌함을 선사하는 이 책은 여행 이야기에 특별히 눈이 간다. ‘여행’, ‘설악풍경’,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 그것이다. 이 세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법한 이야기로 공감을 얻고 있으며 구수한 사투리와 지역적 특성을 살려 구체적이고 생생한 표현들이 매혹적이다. 예의 주도면밀하고 걸죽한 입담은 그의 소설과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접착제 구실을 한다. 씁쓸하고 개운치 않은 결말이 예견되며 비교를 통한 혹은 환상과 기대를 통한 인물들의 심리가 빤히 들여다보이면서도 안타깝고 애잔하다. 철저하게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정하고 묘사하며 정밀한 심리묘사를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전달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순한 시점의 효과가 아니라 능란하고 편안하게 이끌어가는 구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특히 신선하고 적절한 비유는 성석제 특유의 소설적 재미를 더해준다. 우울하고 내면화된 도시적 감수성이 아니라 여전히 지방색이 물씬 묻어나는 인물들에게 독자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친근감은 동일한 계급의식에서 출발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공동체의 일원들이 보편적으로 얻게 되는 편안함과 익숙함은 성석제의 소설에 나타난 인물들의 특징이다. 낚시 이야기를 풀어 낸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와 미래 사회를 예견하듯 톱니바퀴처럼 정교한 이야기의 구성을 보여주는 ‘톡’은 또 다른 시도와 즐거움이 있다. 하나의 규격화된 틀이 아니라 자유롭고 편안한 형식들을 내용에 따라 재단하는 솜씨가 즐겁고 그 발걸음은 경쾌하기만 하다. 그러니 누가 성석제의 소설에 딴지를 걸 수 있겠는가? 아주 오랫동안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그것을 지켜가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작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귀 기울이는 독자. 나는 그 독자중의 한 사람이다. 그간 읽어왔던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인간의 힘>과 더불어 이 책도 책장 한켠에 꽂혀 성석제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의 편안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와 함께 지금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잠깐 동안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 <지금 행복해>를 읽어보자. 08100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