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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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 하게 된다는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된다는 말이다. 2008년을 뜨겁게 달군 화두는 단연코 ‘김용철’과 ‘촛불집회’가 될 것이다. 벌써 아득하게 잊혀진 과거처럼 생각된다면 당신은 무척 바쁘게 살거나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바쁜데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왜 바쁜지, 계속 바쁘면 잘 먹고 잘 살게 되는지 묻고 싶다. 이명박을, 한나라당을 찍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지만 악화는 꾸준히 양화를 구축해 가고 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심한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실연이 아니라 배신이다. 배신背信은 믿음을 등지다, 믿음에 등을 돌린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서로에 대한 ‘기대’와는 다른 의미로 파악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신이란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고한 약속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배신당한 수많은 사람들만 찾을 수 있다. 배신한 사람은 찾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정혜신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은 현상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배신에는 수동태만 있고 능동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적인 관계에서부터 공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적용되는 공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기적인 인간은 누구나 내 눈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동어 반복의 결론 때문이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고려나 내 행동에 대해서는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아픈데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이 있겠는가?

  2004년부터 교양, 상상력, 거짓말, 자존심에 이어 올해는 배신이라는 주제로 한겨레신문사에서 특강이 이루어졌다. 시의 적절한 주제를 중심으로 인터뷰 특강이 이루어진다. 3월에 이루어지는 이 특강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고 매년 가을 책으로 만난다. 아쉽지만 놓칠 수는 없는 책이다. 5년째 꼬박꼬박 사서 읽는 이유는 내겐 소화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답답해서 뉴스를 끊은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그것이 대안은 될 수 없다.

  고민보다 행동, 참여와 연대만이 살 길이다. 이 책은 내게 매년 자극과 함께 용기를 준다. 사면초가 - 홀로 서 있는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다. 살아가다 보면. 그때마다 멀리 있지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며 위안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제자리에 엎드려 닥치고 있으면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사실을 직장 생활 3년만 지나면 강아지도 안다. 하지만,

  김용철은 왜 그랬을까? 검사 출신의 삼성 구조본부 팀장. 그의 선택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던 ‘카더라 통신’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삼성은 무엇이 달라졌으며 검찰은 어떻게 변했는지 점검해 보자.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은 조금 변했는지 살펴보자.

  자신이 속한 단체나 조직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과 말이 더 큰 사회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쉽게 그것을 ‘배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근대적 사고 방식이 뿌리 깊은 우리에게 배신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과연 개인적 이익 때문이거나 배신의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들일까? 내부 고발자를 비롯한 수많은 양심선언을 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한 책을 기다려 보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김용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초헌법적 기관인 삼성과 맞서려고 했을까?

  2008년 한겨레신문의 인터뷰 특강 주제인 <배신>은 우리에게 또 한 번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반성하게 한다. 하종강의 말대로 본능적 유전자인 불평등에 대한 저항은 용기가 필요하고 생존을 넘어 선 실존적 고민에는 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배신 할 용기는 갖추고 있는가? 눈감고 귀막고 벙어리로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김용철은 결코 스스로 배신자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김용철 외에도 정혜신의 ‘배신의 정신 분석’이 특별하다.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고 배신의 개념을 구별하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진중권은 언제나 대중을 배신하며 한 길을 걷고 있다. 그의 논리와 오호의 감정이 어찌되었든 개인적으로 가장 유사한 성향의 인간으로 혼자서 친근감을 느낀다. 과학자 정재승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뇌과학의 입장에서 이마 뒤쪽에 있는 전전두엽에 위치한 자존심과 배신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다른 책에서도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읽었지만 정태인의 FTA 이야기와 이명박 경제 이야기는 이제 저질 코미디에 가깝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다. 슬프다. 계속 미루고 있는 조국의 강연도 인상깊다. 앞당겨 차근차근 그의 책을 보고 싶어졌다. 법은 여전히 평등과 서비스가 아니라 권력과 부정의 수단으로 우리 사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어둠이 내린 창밖을 바라보다 즐겁고 발랄한 책 한 권이 읽고 싶어졌다. 내가 발딛고 선 이 현실에서 조금씩 움직여보지만 쉽지 않다. 더딘 발걸음이지만 불빛을 저버릴 수는 없다. 묵묵히 걷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지식인도 투사도 아닌 나같은 사람의 정체성과 실존적 고민들은 언젠가 다수와 대중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강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고 그것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랬더니 슬몃 미소가 새어나왔다. 벌떡 일어나 뛰어야겠다. 또 다시.


08100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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