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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사람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본능처럼 만들어낸다. 그 시절은 선악과 오호의 판단을 넘어 아련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디지털과 네트워크로 무장된 신인류의 삶을 과거와 비교할 때 단순히 진보했다거나 행복해졌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시절의 문법이 있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가 있었고,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는 밤이 존재했으며 친구나 가족의 소중함은 지금과는 다른 형식으로 다가왔다. 인관관계는 전면적이었고 타인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은 진지하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이제 즉흥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할 만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맺는 관계의 수가 아니라 관계의 질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관계의 수가 많아지면 질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진다. 네트워크 세상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 지구의 끝에 사는 사람들과도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의 흐름을 간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이 요구되는가.
클레이 서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는 우리말 동사를 활용하여 인터넷의 특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모든 사람이 모인 곳은 시장이나 교회가 아니라 인터넷이다. 네트워크 공간을 맹신하라는 뜻이 아니라 필수적인 관계망의 현장으로 그리고 세상의 변화가능성의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졌다.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는 그 이상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있다.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시도해보고 부딪혀 보고 대화를 나누고 행동에 옮겨보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생각의 속도를 뛰어넘을 듯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확한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 방향과 목적에 따라 거시적인 안목에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눈뜬 장님처럼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세계와 구별되는 네트워크 세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해석함으로써 다음 세대와 모호한 미래를 에둘러 짐작하게 한다. 비판적이고 예리한 판단력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사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이다. 저자는 이런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새로운 사회는 결국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말한다. 세대를 점검하는 말들이 유행처럼 퍼진다. X세대, 신세대, 386세대, 네트워크세대…. 사회적 의미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붙었지만 실상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감각적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깊이 있게 분석하거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에 익숙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피상적인 이미지와 감각적 분위기로 그들을 파악한다. 그래서 선입견과 편견은 죽순처럼 자라나고 긍정 혹은 부정처럼 흑백논리로 그들을 재단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 촛불시위를 들 수 있다.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는 말에서부터(전교조가 정말로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국민들을 동원할 수 있다면 세상은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경찰이 유모차부대까지 수사하는 현실에 이르면 할 말을 잊게 한다.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고 현실을 읽어내려는 무지한 사람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또 다른 그들을 양산하기 위해 조중동과 기득권 세력은 얼마나 피눈물나게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의 서두에서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사람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것은 인테넷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고 21세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변화들이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인터넷 보급률이 높다. 노무현은 당선된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결국 역사의 물결이 거꾸로 흐르고 있지만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국민들의 댓가는 너무 크다. 요즘 입버릇처럼 말한다. 당신들이 뽑은 대통령, 5년간 온몸으로 느껴보라. 물론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노란 고름처럼 터지지도 않고 고여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상처의 주변이 더욱 심각하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공유의 혁명과 실천하는 커뮤니티로부터 출발한다. 브리태니커를 비웃는 위키피디아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다음 세대 혹은 현실 세계의 큰 부분에 대해서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혁명에는 반드시 손해 보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절대 도래하지 않는다. 커다란 행복을 누리는 소수의 몰락은 필연이다. 그들의 세금정책과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과 대북 정책을 들여다보라.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정책인가? 새로운 사회는 실천하는 대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기적 욕망의 절제와 사적 소유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공유’할 수 없다. 공유하고 실천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현실에서 변화 가능성을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준비한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바람직한(?) 혹은 행복한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도 아니다.
저자는 변화의 과정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 그 다음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이 현실을 분석하는 가장 훌륭한 틀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직업과 계층과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실에 적용 문제는 당연히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네트워크 세상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것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여전히 끌리고, 쏠리고, 들끓고 있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현실과 미래를 꿈꾸는가?
나는 이 책에서 ‘공유와 실천’이 없는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아주 작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 키워드를 뽑아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확인하거나 미처 분석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정보는 차치하더라도 얼마나 소중한 말인가?
080920-106